웃음꽃행복길

정운과청마의사랑이야기(최정원의첫사랑)

이모르 2020. 12. 25. 20:26

 

 

20181228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는 행복길

카톡창이 열렸습니다

 

편지에 대한 가 시작 되었습니다.

 

 

 

 

봄비맞은 편지 / 평보

 

봄비 때문입니다

바람 때문입니다

참새의 수다 떠는 모습도

여린 새싹들의 고통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움 입니다.

창밖 유리창에 부서지는

물보라 속에

정다운 미소가 보입니다

환영

사람이 그립습니다

봄비 때문야

바람 때문야

문틈에 끼어놓은 편지

빗물에 번진 편지는

내게 속삭였습니다.

보고싶다.....

 

 

 

 

춘곡

 

평보의 시를 보니 정운과 청마의생각이

떠오르네요

 

정운 이영도가 청마 유치환의 편지를

책으로 출판하여 개인의 편지를 세상에

공개한 것은 도덕적인 면에서 정당한 일일까요?

갑자기 그냥 궁금해져서 한번 여쭈어 봅니다

 

가인

 

그들의 불륜은 청마 아내도

꾹 참고 눈 감아준 문제를 새삼 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춘곡

 

.. 오늘 질문은 불륜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편지를 받은 사람 맘대로 공개 하는

것의 정당성 여부 입니다

청마야 이영도에게만 그

런 편지를 했던건 아니었다니까요 ㅎㅎ

 

라라

 

어머 그래요?

그럼 청마는 순간 사랑 들을 한건가요?

 

춘곡

 

이런 이야기도

청마가 사고로 죽은 후 다른 여인들이

청마의 편지를 공개 하려 한다는

소문에 이영도가 선수를 친것이라는 ...

이건 믿거나 말거나 확인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ㅎㅎㅎ

 

가인

 

춘곡님이 저에게 연애편지를

수십통 보내 보세요, 저도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 같은데....

 

춘곡

ㅎㅎㅎㅎ

 

가인

죄송!~~

 

춘곡

 

맥령 /이영도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모래 솥을 열어보네.

 

한 끼 건너기가 강물보다 어렵던가.

고국을 찾아온 겨레 몸 둘 곳이 없다 말이

오늘도 밥 얻는 무리 속에서 새 얼굴이 보인다.

 

가인

 

시 고국을 찾아온 겨레.. 이게 뭠니?

좀 풀어주시면 이뻐할게요

 

춘곡

 

우선 제목 맥령(麥嶺)은 보릿고개란 말이구요

고국을 찾아온 겨레.. 해방되어 망명지 등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동포들의 어려움을 읊은시입니다

 

가인

 

아하, 일제시대 배고픈시절 이군요

춘곡님 은 만물박사!!

모르는게 없어요

 

춘곡

 

뭐 잡수시고 싶은거 있으세요? ㅎㅎㅎ

 

라라

 

연서는 아니여도

연톡이라도 받고프다

 

가인

 

아니, 춘곡님이 아는게 많아서 드시고

싶은것도 많을거 같아요

ㅎㅎ 연톡!!!

 

춘곡

 

저도 지금 연톡 이란 말에 빵 터졌다는 ㅎㅎㅎ

 

가인

 

ㅎㅎ 정말 연톡....

 

라라

 

지금 지어낸 말

오죽하면..

간절하면 이루어질려나

 

가인

 

ㅋㅋ 그만해~

 

라라

~~

 

춘곡

 

올라브하우게 시에다 한줄 덧붙일께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태양이 아니라 물을 원해요

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 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춘곡

 

한줄 연톡을 원해요

ㅎㅎㅎ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

 

정운 이영도


청마(靑馬) 유치환(1908~67)이 정운(丁芸)

이영도(1916~1976)를 향한 사랑을

읊은 시 '행복'이다.

 

유치환은 기혼자로 장년의 나이에 이영도를

만나 20여년 동안 식지 않는,

불같이 뜨겁고 아름다운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었다.

그가 사고로 별세할 때까지 이영도에게 보낸

5천여 통의 편지는 그 사랑의 모습을 잘 말해준다.

시인인 두 사람 간의 그런 사랑은 주옥 같은

시를 남기게 했다.

 

유치환과 이영도가 처음 만날 당시 유치환은

38세의 기혼자로 통영여중 국어교사였고,

이영도는 30세로 같은 학교의 가사교사였다.

이영도는 21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되어

딸 하나를 키우며 오직 시를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이영도는

시인이자 미인이어서 많은 남성들의

선망을 받고 있었다.

이영도는 당시 통영으로 시집 온,

그녀의 언니집에 머물고 있었다.

문학적 재능과 미모를 갖춘 그녀는 처음에는

수예점을 운영하다 광복되던 해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했다

 

유치환은 만주로 떠돌다 광복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되었다.

유치환은 이영도보다 여덟살이 많은

38세의 유부남이었다.

이영도는 워낙 재색이 뛰어나고 행실이 조신했기에

누구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통영여중 교사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에게 

유치환은 1946년 어느 날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을

움직여 이들의 사랑은 시작됐다.

하지만 유치환은 처자식이 있는 몸이어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이들의 20여 년에 걸친

사랑은 당대 젊은이들에게 전설 같이 다가갔다.

유치환은 1967213일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편지를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유치환은 매일 새벽에 일기를 적듯 이영도를

향한 마음을 편지로 썼다.

서른아홉의 장년에서부터 육순의 노경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의 긴 세월을 두고 한결 같은 사랑을 담아 쓴 편지.

그것은 비록 사적인 것이지만, 유치환 문학의 일부이고

그의 시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지고지순한 연애사이자 우정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1946년부터 1950년까지의

초기 편지는 6·25전쟁 때 불타버린 일이다.

우익 진영에 몸담은 유치환이었기에 만일의 경우

편지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사람의

신변에 위험이라도 있게 된다면

하고 염려한 그는 함께 피란을 떠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자신의 편지를 불태울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영도는 그때까지의 편지는 그대로

시이고 문학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란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치환의

일방적인 애정에 자신은 어디까지나

우정으로 자처해 왔었는데,

 피란을 가서 나라가 위기에 놓였을 때 재회의

기약도 없는 유치환의 안위를 기도로써 달래면서

 비로소 그와의 정이 단순한 우정만이 아닌

애정임을 자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처자식이 있는 남자와 일찍이 과부가 된

두 시인의 사랑은 절절하기만 하다.

1952년에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들의 일부를 아래에 싣는다.

정향(丁香정운(丁芸)은 이영도의 아호다.

사랑하는 정향! 어찌하겠습니까?

병 같기도 합니다.

낮에 당신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니 이제라도 당신에게로 뛰어가서

당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그러나 진아(鎭兒: 이영도의 딸)가 공부하고 있겠고-

하는 어설픈 분별이 나를 붙잡았습니다.

정향 나를 미련하다구요? 그렇습니다.

황소나 수콤같이 미련한가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이나 애타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때에는 아무리 옳은 도리도, 거룩한 말씀도,

타이름도 아무 소용없는 실없는 헛것 같이밖에 들리지 않을 뿐,

달려가서 당신을 껴안고 울고만 싶을 따름입니다.

정향!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여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참으로 마음에 쌓이고 쌓인 말은 모른 척 덮어두고

뚱딴지 같은 소리로서 외면 단장을 하는 것입니까?

더구나 당신 앞에 가면 내가 그러합니다.

627일 당신의 마

! 어찌하여 내가 운을 이렇게까지

그리워하는지를 알고 싶습니까?

말하리다. 그것은 나의 정신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을

당신에게서 보아낸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당신도 생각하고,

내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죄다 느끼는 때문입니다.

일호의 무리도 있을 수 없는 지순한 공명(共鳴)입니다.

나의 귀한 운! 죽어도 운 곁에 묻히고 싶다고

어느 날인가 내가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만약 정신-영혼-의 귀의를 운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들 어찌 현실의 생명을 떠난 후에까지도

이런 소망을 가지리까. 722일 당신의 마

오늘은 죽을 성 우울했습니다. 바람이

심하고 안개가 자욱한 탓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돌아와 책상에 마주 앉아 뉘우침처럼 느껴지는 것은

진실한 사랑 앞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제약이 막아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 앞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 아닌

헛이야기만 늘어놓다 왔구먼요.

어디까지나 깨끗하고 얌전한 당신이기에,

어디까지나 말 없을 줄 압니다.

그리고 나 자신 내가 어떠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당신 앞에서는 더더구나 뼈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814일 당신의 마

사랑하는 정운! 편지를 쓰지 말라는

당신 말씀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아니 쓸 수 없는 것은 결국 이것이

나 자신의 위안이 되는 때문인가 봅니다.

진정 이렇게 종이를 대해서나마 당신을 불러보지

못한다면 어디서 이 애틋한 그리움을 풀겠습니까?

817일 당신의 마

! 언젠가 이렇게 말씀 드린 것 기억하시는지요?

-마가 시방 현재의 위치에서 결코 운을

욕되게 않을 자신이 있다던 것을

- , 이 말이야말로 당신을 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표면에 나타난 우리의 행동을 두고 세상이 무어라

말하더라도 나의 진실에 있어서는 결코

나를 파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마가 몇 차례의 여성과의

연애를 겪은 일은 당신도 잘 아십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과의 애정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이것을 나의 어떤 유혹의 구변(口辯)

줄로 아신다면 또한 그뿐,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고 싶지 않은 나의 진실입니다.

육체적인 것, 그것만을 당신에게 내가

추구했다면 나는 벌써 당신에게서 희망을

버리고 다른 데로 옮아갔을 것입니다.

824일 당신의 마

 

2017.06.15자 영남일보에서 퍼옴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에 대한 청마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관계였기에 퍽이나

고통스러운 사랑이었다.

미모와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21살에 출가해서

딸 하나를 낳고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던 정운 이영도는

해방되던 그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자태에 반해버린 것이다.

 

일제 하에서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남보다 피가 뜨거운서른 여덟살의 청마는

서른의 청상 과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1946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고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하였다.

처자가 있는 청마로써는 그녀와의

사랑은 애초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숙명일 수밖에 없었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인연 이기에 청마의 가슴 속에 자리한

연정의 조각은 가슴 저미는 쓰라림으로 남아 있곤 하였다.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현실의 사랑을

한 단계 초월하여 받는 이 보다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그의 사랑은 외로움이었다.

아마 한계가 있는 사랑이기에 오히려

감동을 더욱 진하게 안겨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결혼한 청마와 홀로 된 정운.

 

청마는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통영여중

교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정교사인 정운을 마주치지만

닿지 않는 인연이 안타까워 연서로써

그리움을 달랜다.

60살이 되던 1967년 교통사고로

타계하기까지 20년 동안 청마가 띄운 연서는

모두 5000여통. 사모의 정을 담은 편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낸 셈이다.

그 중 200통의 이야기는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에 실려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감성을 울리고 있다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아무튼 청마는 생전에 5000여 통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면서

장년기의 제2청춘(?)을 아름답게 엮어 나갔다.

이영도의 시를 보면 그녀도 매몰차게

청마를 거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유치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둘 때까지

숱한 세월의 격랑 속에서 안타까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긴 세월 동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 '1967213. 둘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후 2시쯤 청마는 그 약속을

취소한다고 전화했다.

 예총 모임 때문에 못 만난다며,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반복했다.

다시 11시간 뒤쯤 전화가 왔다.

청마가 아니었다.

대학병원이라 했다.

청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미어졌다.

그날 밤 그녀는 미국에 가 있는

딸 진아에게 편지를 썼다.

 ‘그이가 죽었다. 그이가 죽었다.'

 

 

부산에도 그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영도는 1956년부터 11년 동안 부산 금정구

장전동 자택인 애일당에서 살았다.

박옥금 시조시인은 이영도 평전

 내가 아는 이영도, 그 달 빛 같은에서

현재 부산대 앞 장전3동 장전2지구대

맞은편 장전제일교회 주차장 자리가

 애일당 터라고 밝힌다.

부산 동래 금강공원에 '단란'

'석류' '모란'이 새겨진 이영도 시비가 있다.

 

그리움/이영도

 

생각을 멀리 하면

잊을수도 있다는데

 

고된 설움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한 가슴

밀고드는 그리움

 

그리움/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무제  /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소프라노 최정원의 첫사랑

 

그대그리고나(도봉산포대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