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행복길

백제의미소를닮은여인들(달빛에돚을달고)

이모르 2020. 12. 26. 12:43

 

 

 

 

 

2019년4월1

 

춘곡

 

지난 주말 선바위역에 세분을 내려드리고 귀가하며

오늘의 즐거움을 한마디로 표현 할 말을 찾다

문득 떠오른 말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였습니다

이 말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문화를 표현한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전 백제의 studio에서 세분의

백제미인과 음악 감상을 한 행복한 하루였다는

말입니다.

 

 

 

 

평보

 

선비 춘곡은 정말

완벽한 표현으로 세분을 표현 하였네요

그래서 서산에 있는 백제 마애여래 불상의

미소를 말하였던 것인데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창밖에 함박눈이 내리는 음악실에서

같이했던 순간들은

오래오래 회자 될것입니다

 

 

 

 

평보

 

그래서 말씀인데요 아래글은 위키백과에서

모셔온글입니다

 

문화 삼국시대와 한국인의 다양성

 

같은 한민족이 만든 문화지만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가 그렇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만들어냈다고

생각될 만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는 남성적인 문화를 보여준다.

고구려의 벽화에서 남성적인 역동성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문화를 찾을 수 있다.

 

무용총의 수렵도와 사신도四神圖가 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상상의 동물들을 그린

그림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힘차고 공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신라는 화려하고 빼어난 황금문화를 만들었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귀족적이고 드러내는 문화다.

한민족의 문화에서 독보적으로 화려하고

빼어남을 내보이는 문화를 창조했다.

금관이나 금귀걸이, 금혁대 같이 황금을 숭상하고,

불국사와 같이 나 보란 듯이 자신감 넘치는

문화를 보여준다.

반면 백제의 문화는 화려함의 반대편이 있다.

소박하고 서민적이다.

수더분하고 은근하며 부드럽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견으로 백제문화의

우수함이 밝혀졌지만 전체적으로 소박하다.

 

 

 

 

고구려의 남성적인 역동성, 백제의 소박함과 은근함,

신라의 화려함과 드러내는 문화는 누가 봐도 다르고

특별한 미의식의 세계를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같은 민족이 만든 문화로서 이해하기

힘들만큼 이질적이다.

더구나 백제와 신라의 문화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

특징적인 면들이 있다.

백제의 뒤로 숨는 소박함과 은근함에 대비되는

특성을 신라는 가졌다.

 

 

 

 

 

 

신라문화는 화려하고 드러낸다.

백제와 신라가 같이 여성적이면서도

백제는 소박한 여인네라면 신라는 멋을 부린

여인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고구려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남성적이고 살아

꿈틀대는 근육 같은 역동성을 보여주는 남성문화다.

 

한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특별한 것이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서

독특하고 특별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다시 신라의

미의식 세계를 한반도에 펼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에게 남아있는

문화는 백제의 문화다.

고구려의 역동성과 신라의 화려함은 사라지고

패망한 왕조 백제의 문화가 그대로 한국인의

문화적 기질로 자리 잡았다.

 

고려를 넘어뜨리고 개국한 조선왕조와

근대 이전의 문화의 모습을 살펴보면

백제적인 요소가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국의 문화는 은근하면서도 소박하고

수더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자연성에 기초한 소박함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백제 온조왕이 자신이 지은 신궁에 대하여

자평했던 말로 김부식이삼국사기를 지으면서

백제본기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문화를 가장 구체적이고 적절하게

표현한 말로 인정받고 있는 문장이다.

백제의 문화는 검소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표현이

백제문화에 딱 맞는 문장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문장으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해서 신라에게 패망한 나라의 문화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문화의식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까.

삼국을 통일한 신라문화가 사라지고

백제의 문화가 한국인의 문화기질로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악3호고분 행진도

천년이 넘은 세대 고대 고구려의 통치권자의 행차도는

근대에 들어선정조대왕 능행도나 별다른 점이없다

궁수들의 호위를 받고  행진하는 귀족

 

 

 

신라 천마총 관모(天馬塚 冠帽)는 경상북도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때 모자이다.

 대한민국의 국보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으로 만든 관() 안에 쓰는 모자의 일종으로

높이 16센티미터, 너비 19센티미터이다.

각각 모양이 다른 금판 4매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금관과 함께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의 하나이다.

이 관모는 모자 모양이기는 하나 머리에 쓰기에는

작기 때문에 가죽 혹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의 윗부분을 장식한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종목 :국보84호

 

명칭: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분류: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1좌

지정일: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

시대:백제

소유자:국유

관리자:서산시

문화재청 홈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천의를 걸치지 않은 상체는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

 

 

 

 

 

백제의 왕관 장식(무령왕)

 

백제는 삼국 가운데 불교 미술이 발달하였다. 7세기,

신라가 황룡사9층 목탑을 지을 때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가 초빙된 사실 이나

일본 초기 사원을 창립하기 위하여 사공(寺工)과

기와 만드는 기술자 등이 건너간 사실에서

백제 건축술의 발전상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