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영국의미녀들(헨리8세의여인들)

이모르 2020. 12. 13. 11:00

 

 

 

마이어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로 1996년 영화 <마이클 콜린스>로 데뷔했다.

이후 미국 드라마 <튜터스 : 헨리 8세>를 비롯해 영화 <어거스트 러쉬><황시> 등에 출연했다.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에 있던 프라센티아 궁전에서,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남매로는 형인 아서(웨일스 공), 누나 마거렛(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의 왕비), 여동생 메리(프랑스의 루이 12세의 왕비)가 있다. 1493년에 아직 젖도 못 뗀 헨리는 드바 성의 성주로 임명되었다. 다음 해 1494년에는 요크 공작이라는 작위를 수여받았고, 그와 더불어 잉글랜드 문장원총재 및 아일랜드 총독으로 지명받았다.

 

 

 

 

 

1501년에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막내딸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하였던 아서가 급사하자, 헨리가 죽은 형의 뒤를 이어 웨일스 공이 되었다.

 

 

 

헨리는 잉글랜드 왕실 역사상 최고의 인재로서 라틴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를 완벽히 구사할 줄 알았으며, 무예와 마상 경기 등 스포츠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그가 작곡한 것으로 여겨지는 악보(합창곡 Pastime with Good Company 등)도 현존하는 등 문화사에도 그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영국 역사에서 후세에 가장 많은 이야깃 거리를 남긴 파란만장한 왕, 헨리 8세!

평생 여섯명의 왕비를 두었고, 결혼과 이혼문제로 종교개혁까지 단행한 것은 물론,

두 왕비와 여러 공신을 처형하는 잔학무도한 모습을 보이기도했지요!

 

헨리 8세는 여섯 아내 중 둘이나 처형해서 무시무시한 동화 "푸른 수염" 의 모델이 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아내들과 토마스 모어. 토마스 크롬웰 등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것에 비하면 위대한 군주이고자 했고,

국민들에게는 폭정을 가하지 않았기에 인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하네요.

중년이 후 몸집이 불었을 때의 그렸던 초상화만 보시고 실망하신 분들도 많으신데,

헨리 8세가 왕으로 즉위할때인 18세 젊은 시절엔 상당히 매력적이고 힘있는 청년 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의 패션을 한 몸에 담고 다녔던 패션리더이기도 했구요 ^_^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자녀들도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역사적으로 수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킨 유명한 왕들이 되었지요.

영국 역사상 최고의 왕실 스캔들로 기록될 헨리 8세의 왕비들에 대해 소개해드릴게요!

 

 

●첫번째 왕비, 캐서린 아라곤.

 

캐서린은 스페인 출신으로, 처음에는 헨리의 형인 아서와 결혼했지만, 아서 왕자는 결혼 5개월만에 죽고 말았죠.

당시 캐서린은 겨우 17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머무르다

헨리가 즉위하면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연인처럼 애뜻하거나 정열적인 사랑은 아니었지만 협력자와 같은 좋은 관계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후로 20년 이상 헨리 8세와 캐서린은 무난한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아들에 대한 열망이 컸고, 캐서린에게는 더 이상 아들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헨리 8세는 캐서린에게서 마음이 떠나게 됩니다.

결국 캐서린의 나이 48세, 헨리 8세의 나이 42세에 이혼을 하게 되고, 3년 후 캐서린은 병으로 사망하게 되지요.

캐서린과 헨리 8세 사이에는 딸 메리가 있었고, 메리는 훗나 메리 1세 여왕이 됩니다.

 

 

 

●두번째 왕비, 앤 볼린.

 

그녀는 캐서린 왕비의 시녀로 눈은 아름답지만,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헨리는 그녀의 도도한 매력에 빠져들었고 정렬적으로 앤을 사랑했다고 하네요.

캐서린 왕비에게서 왕자를 얻지 못하자 헨리는 왕비와 이혼하고, 앤 블린과 결혼을 감행하게 되지요.

 

형수와 결혼했었다는 것을 이유로 결혼무효를 주장하지만 교황청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헨리는 앤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과 관계를 끊으므로 종교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영국 국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해요.

 

 

앤 볼린은 1533년 1월 헨리와 결혼하고 1533년 가을 엘리자베스 공주가 태어납니다.

엘리자베스는 훗날 영국을 반석에 올려 놓게 되는 군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되지요!

 

하지만 헨리 8세는 왕자가 아닌 공주의 출생으로 무척 실망하게 됩니다.

다음 해에는 유산, 그리고 1536년1월 앤이 왕자를 사산하자, 헨리의 애정은 싸늘하게 식습니다

 

앤에게서도 아들을 얻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헨리는 앤과의 이혼을 계획하지만

앤이 순순히 이혼해주지 않자 그로부터 넉달이 지나지 않아 1536년 5월 앤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시키게 합니다.

 

그게 앤 볼린을 < 천일의 앤 >으로 불리우게 한 3년간의 결혼생활의 결말이었지요.

 

그런 앤 볼린에겐 여동생이 한명 있었지요, 바로 메리 볼린.

 

 

 

그녀는 헨리8세의 정부. 매력적인 관능미와 순수하고 착한 마음씰 헨리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언니인 앤 볼린보다 먼저 헨리의 정부로 궁에 들어와 있었어요.

권력에 대한 욕망, 야심은 없었다고 해요. 순수하게 왕을 사랑하고, 순종적으로 자신을 바치는 헌신적인 여인이라고 하는데요.

 

헨리8세와 처음 만난 날 침실로 초대받아 왕을 직접 모시고 동침까지 했다고 해요.

그녀는 그러다 임신을 하고, 헨리의 아들을 출산하지만 언니인 앤 볼린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 아들이 사생아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는군요.

하지만 천성이 워낙 착하고 여려서, 그런 언니를 원망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며 물심양면으로 언니를 도왔답니다.

 

후에 언니인 앤 볼린이 처형당하고 죽은 언니의 딸인 엘리자베스 공주를 데리고 와 지극정성을 다해 키워냈는데요.

바로 그 딸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입니다.

 

엘리자베스공주가 훗날 영국을 빛낸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이모 메리 볼린의 극진한 지극정성의 보살핌속에 가르침을 받고

 

 

그녀의 순수한 마음과 어진 품성을 물려 받은 덕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앤&메리 볼린 자매의 스토리, 바로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나탈리 포트만, 스칼렛 요한슨, 에릭 바나.

 

이미 캐스팅만으로도도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The Other Boleyn Girl이라는 원제가 말해주듯이

 

헨리의 왕비가 되지 못했던 메리 볼린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죠.

 

왕비가 되기 위한 야망을 불태우는 요염하고 도도한 앤 볼린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

관능미와 동시에 순수한 매력을 지닌 메리 볼린 역의 스칼렛 요한슨.

 

 

 

 

●세번째 부인, 제인 세이모어.

 

 

제인 세이모어는 그다지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었다고 해요.

헨리 8세는 앤 볼린의 시녀였던 제인 세이모어에게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앤 불린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하게 됩니다.

앤 볼린에 대한 열정만큼 제인 세이모어에 대한 사랑도 뜨거웠고 앤 볼린이 캐서린의 가슴을 찢었듯, 제인 세이모어는 앤 볼린의 가슴을 찢었지요.

헨리 8세는 첫 아내 캐서린도, 두번째 아내 앤 볼린도 낳지 못 하던 아들을 제인 세이모어는 1537년 헨리에게 안겨 주었죠.

제인은 그토록 열망하던 아들 에드워드를 헨리에게 안겨 주었지만 산후 후유증으로 에드워드를 낳은지 열흘이 지아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제인 세이모어의 아들이 훗날의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6세가 된답니다.

 

 

 

 

 

 

 

 

 

●네번째 부인, 앤 클레브스.

 

클레브스 공작의 누이였던 앤은 독일과의 우호관계를 위한 정략결혼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만나기 전에 들은 소문이나, 보았던 아름다운 초상화와도 다른 외모의 앤에게 헨리는 처음부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1월에 결혼한 앤과 그해 7월에 이혼합니다 .

무시당하다가 몇달만에 이혼당한 비참한 운명이라도 처형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요.

클레브스의 앤은 헨리 8세의 아내들 중 가장 장수했다고 하네요!

 

 

●다섯번째 부인, 캐서린 하워드.

 

 

헨리 8세는 클레브스의 앤과 이혼한 직후 캐서린 하워드라는 19세의 어린 소녀에게 반해 재혼하게 되는데요.

헨리 8세는 격정적이고 정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아요.

비록 노후였지만 어린 신부인 캐서린 하워드에게 매혹되어 적극적으로 구애했고, 여느 젊은이 못지 않게 사랑을 갈구하고 빠져들었답니다.

19살의 어린 나이로 헨리와 결혼한 캐서린 하워드는 29세나 연상이었던 헨리에게 무척 사랑받지만,

캐서린은 시종이나 악사, 조카등 여러 남자들과의 불륜을 거듭했고, 결혼전의 문란했던 관계까지 드러나면서

1541년 11월 런던탑에 유폐되었다가 1542년 2월 22살의 어린 나이로 참수형을 당합니다.

 

 

 

 

 

 

 

●여섯번째 부인, 캐서린 파.

 

1543 년 7월 31세로 헨리의 여섯번째 아내가 된 캐서린 파는 헨리와의 결혼이 초혼은 아니었습니다.

 

 

 

 

1529년에 어린나이에 첫 남편을 잃고, 두번째 남편 역시 헨리와 재혼하기 전 해인 1542년에 잃었고,

두 번의 결혼에서 두 번 과부가 되었던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지요.

 

그녀는 헨리의 건강을 세심하게 챙기고 헨리의 아이들도 따뜻하게 돌보는 편안한 휴식같은 아내였다고 합니다.

 

1547년 1월 헨리 8세가 죽은 후 캐서린 파는 제인 세이모어의 남동생과 결혼합니다.

왜 하필이면 제인 세이모어의 남동생일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헨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왕자가 바로 제인 세이모어의 아들이기 때문이었지요.

 

에드워드가 5살일때 왕비가 되어 왕자를 보살펴온 캐서린 파는 에드워드를 자식처럼 여겼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드워드가 9살의 나이에 왕위로 즉위하자 외삼촌인 토마스 세임어와 결혼해서 어린 왕 에드워드 6세에게 도움이 되고록 하고자 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혼 다음해인 1548년 8월 캐서린 파는 토마스 세이모어의 딸을 낳고 난산으로 인해 그로부터 채 며칠이 지나지 않은 1548년 9월 세상을 떠납니다.

 

 

 

와, 6명의 부인과 정부까지.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영국 역사 최고의 막장(?)드라마, 헨리8세와 그의 여인들... 너무 흥미진진해요-!

개인적으로 영화 천일의 스캔들을 재밌게 봤는데요, 그 영화에 나온 부분은 헨리의 여인들의 단편이었군요 ㅎㅎㅎ

 

 

내용은 네이버 지식인 akqndls의 님과 ethnos44 님의 글을 참고했답니다. ^^

아이디 클릭하시면 원본글로 이동하실 수 있어요:)

 

옮겨와서 약간의 편집했는데손녀가 컴을터치하는 바람에출처를 못찾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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