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복숭아꽃시모음(비밀사랑 도리스데이)

이모르 2020. 12. 27. 11:33

무릉도원

 

우리집 정원은

삼각산이다

 벚꽃이 지던날

복사꽃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洪桃 

몇일지나니

桃花가 만발하였다

 

복사꽃 핑크색술

사이로 직박구리가

앉았다

   

연지곤지 짝고

가마타고

우물가 복사꽃 돌아

시집가던 열여덜

새색시가 생각났다

 

동화같은 복사꽃에

취하고 옛날을 기억하는데

 

복사꽃 속에서

직박구리 들이 사랑을

노래한다

 

복사꽃 핀 마음의 고향

도연명의 무릉도원이

환하게 펼처졌다

 

 

산 복숭아꽃/김용택


봄바람 속에
산 복숭아꽃은 피어 붉고
내 마음은
봄 불같이
살살 산을 타고 오르는데
산으로 가서
산으로 가서
꽃들이 피어나는 산으로
나는 가서
신열이 스치는 이 어지러운
이마를
서늘한 네 몸에 대고 싶은데
저 산 저 붉은 산 복숭아꽃은
산을 타고
산꼭대기로
산꼭대기로 자꾸자꾸 올라만 가네

 

 

복사꽃/이생진
 
 
나는 가끔 오래된 혼백과 이야기하는 수가 있다
북한산 유일한 복사꽃 나무 밑에서처럼

"매월당 김시습이 다녀갔을까"
"다녀갔겠지 언제고 나보다 한 걸음 먼저
왔다 가는 사람이니까 다녀갔겠지"

복사꽃이 기절한다
이걸 못보고 봄이 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세 살 때부터 좋아하던 꽃
죽어서도 사월엔 복사꽃을 찾겠지

 

 

복사꽃아/허영자

 

예쁜
복사꽃아

마침내
네 분홍저고리
고운 때 묻는 것을
서러움으로 지키거늘

네 분홍저고리
어룽져 바래는 색을
눈물로서 지키거늘

이 봄날
복사꽃 지키듯
내 사랑과 사랑하는 이를
한숨으로 지키거늘....

 

 

열여덟 복사꽃같이/성선경

 


아흔 살 할머니가 목욕탕에 갔는데

빨간 때밀이타월로 때를 미는데

여든 살 할머니가 옆에 와 앉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자매 같아서

다정히 자매 같아서 보기 좋았는데

빨간 때밀이 타월로 때를 밀다가

아흔 살 할머니가 옆을 보며 물었다.

거기는 올해 몇인기요?

여든 살 먹은 할머니는 부끄러워하며

올해 간당 팔십이라고 말하고

빨간 때밀이타월을 꺼내는데

아흔 살 먹은 할머니가 말했다.

그래놓으니 새댁이 참 곱다.

여든 살 먹은 할머니는 빨간

때밀이타월을 들고 호호 웃는데

부끄러워하며 호호 웃는데

아흔 살 먹은 할머니가

여든 살 먹은 할머니를 곱다 말하니

온 목욕탕에 더운 김이 무럭무럭

빨간 때밀이타월이 호호 웃는데

온 목욕탕이 호호 웃는데

거기는 올해 몇인기요?

열여덟 복사꽃이 환하게 폈다.

 

 

 

복사꽃, 천지간(天地間)의 우수리/오태환 

 

 

삐뚜로만 피었다가 지는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백금(白金)의 물소리와 청금(靑金)의 새소리가 맡기고 간 자리 연분홍의 

, 저렇게 세살장지 미닫이문에 여닫이창까지 옻칠경대 빼닫이서랍까지 죄다 열어젖혀버린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맨살로 삐뚜로만 삐뚜로만 저질러 놓고, 다시 소름같이 돋는 참 난처한 그리움을 만난 적 있으신가 발바닥에서 겨드랑이까지 해끗한 달빛도 사늘한 그늘도 없는데, 맨몸으로 숭어리째 저질러 놓고 호미걸이로 한사코 벼랑처럼 뛰어내리는 애먼 그리움, 천지간(天地間)의 우수리, 금니(金泥)도 다 삭은 연분홍 연분홍 떼의

 

  -시집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2013)에서

 

 

복숭아 / 서기석

 

그린비 오시는 길

굽이마다 등불 밝혀

 

달싹이는 이내 마음

넌지시 얼비치다

 

얼결에

차오른 가슴

그대 머문 빈자리

 

복사꽃 그리는 맘

꿈속을 도닐다가

 

한뉘를 살아온 듯

노을 지는 가슴앓이

 

저물녘

옹골진 가슴

외등으로 내걸다

 

 

 

 

복사나무/이태관

 

알몸을 보았다고 했다 그것도
갓 목욕을 한 싱싱한 육체에선 천상의 향기처럼
아련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지
늦은 밤, 술을 마시다
안주를 구한답시고 현관을 나선 녀석이
설레발치며 들어서더니
이웃집 처자의 알몸을 보았다 했다
문을 두드리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그녀가 나왔다고 했다
달빛 깊은 밤이었다

 

복사꽃 웃음소리가 마을을 휘돌던 밤이었다

 

달빛에 취한 그놈의 얼굴을
복사라도 한 장 해놓고 싶은
그런 밤이었다

 

― 『숲에 세 들어 살다(달아실시선27, 2020)

 

 

개복숭아꽃[공광규]

 

 돈 벌러 가출하여

이놈 저놈한테 뜯어 먹히고

버림받은 우리 누이

 

이른 봄

병든 아버지 문안 인사하러 왔다가

차마 동네 어귀를 넘지 못하네

 

이놈 저놈한테 버려져

거친 물살에 떠내려가다가

바윗돌 움켜잡은 우리 누이

 

이른 봄

화장발 부끄러운 얼굴로

차마, 동네 어귀에서 환하네.

 

 

아홉폭 병풍/김종제

 

말티고개 무릎 지나
갈목재 허리 넘어
삼가저수지 배꼽을 끼고
솔숲 가슴, 걸어 올라가면
거기 아홉 폭 병풍 펼쳐놓은
구병九屛마을 얼굴이 보인다
지리산 그곳까지 걸어오느라
제비꽃, 숨이 턱, 까지 차오르고
분홍빛의 복숭아꽃을 입, 에 문
작설雀舌의 새 한 마리
, 에 냉큼 앉아
꽃 질거라는 예언을 속삭이고 있다
쑥 하고 올라온 이 아득한
사월의 향기를 코, 로 맡아본다
생신지 몽환인지 깨우느라
, 을 치는
나비의 날갯짓이 분주하다
너럭바위에 물고기 베고 누웠으니
묵상으로 하늘을 끌어당겨
, 기울여봐
, 속으로 천둥벼락 치는 소리
허공의 섬으로 가는 물길 열린다
이마, 에 평상을 놓으면
먹구름이라든가 산들바람이라든가
세상 지나가는 손님
발길 멈추고 잠시 쉬어가겠다는데
천장의 머리카락, 산끝에서부터
지하의 저 발바닥 아래, 냇가까지
스멀스멀 지독한 구토 일어나는
아홉 폭 병풍 두른 九病의 봄날이여

 

詩 출처/시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