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산책길에서 만난 문단의거목(김광림)

이모르 2020. 12. 30. 16:39

어디서 많이 뵈온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몇일 친분이 생겼다.

산책길에서 만난 한국문학의 거목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산새가 놀고 단풍과

열매들이 가을 정취를 발산하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성큼 성큼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벤취에 앉아 휴식을 취 할 때에 인자한 모습의 할아버지

께서 앉아있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녕 하세요?

인상이 좋은 분은 친척모양 밝은표정으로 웃고 계셨는데

 

몇일이 지난후 그분이 한국 문단의 거목 김광림 교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탈하고평범한 운동복 차림의선생님을 누가 알아보겠 는가?

 

중등 교과서에 선생님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한국문인협회장을

지내신 분은 아무도관심밖에 있었다 기운도 없으시고 !!!1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인자한 선생님은 조용히

 

휴식을하신다..

 

 

저마다 목청을 높이는 젊은 사람들에게 조용한 교훈을

 

주는 것만 같다.시집을 주셨다

 

 

 

 

 

 

 

 

 

“버리면 보이느니”22쪽에

 

 

 

못 버린 젊다는 생각

팔순이 다되어도

젊다는 생각을 못버려

 

中國의 명산

黃山에 올라

두마루나

오르내리고 나서

돌아오는길에

 

그만

가마타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아침마다 산책길에

으레 거동하는

다섯가지 운동기구

그중 하나가

둑을 내려가야만 있어

늘 다니던 고빗길을 제치고

좀 빨리

심한 경사를 타고 내려가다

나둥굴어

내가 지향하던 운동기구에서

뛰어내린 한 여인네

白髮의 내 팔을 부축이며

은근 슬쩍 뇌까린 푸념

안전한 계단 놔두고

이게 왼일이세요-

가지가지야

밤마다 이불 속에 들면

내 꼬추를 만지작 거려

약을 올려주던 할아버지

내가 돈을 먹은 후론

동전의 向方을 찾아

큰변을 볼 적마다

막대기로 휘졌고 했지

胃囊을 벗어난 동전은

還俗의 열두굽이 돌아

蠶室오물처리장에 당도 했지

사흘만에 나는 황금의 알을 밴 거위 처럼

쌔까맣게 탄 돈을 낳은 거야

(가지가지야 시평 동시대 시인 그세계)

세상 게집이라든가 정의라든가 인권 같은거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세상에서 하필이면 소화를 못시켜 똥으로나 감싸서 내갈기는 고약한

이것을 못 먹어서 이렇게 속을 태우고 앓고들 있으니 !!!!

 

 

 

 

 

이중섭 전시회때 선생님의 추억의 헌시를 재미있게 본적이 있다

그때의 감흥으로아는체를 하였는데 선생님께서는 반가워 하셨다.

 

 

 

 

한여름에 들린

가야산(伽倻山)

독경(讀經) 소리

오늘은

철 늦은 서설(瑞雪)이 내려

비로소 벙그는

매화(梅花) 봉우리

눈 맞는

해인사(海印寺)

열두 암자(庵子)를

오늘은

두루 한겨울

면벽(面壁)한 노승(老僧) 눈매에

미소(微笑)가 돌아

 

<학의 추락, 한국시인협회, 1971>

 

 

천 근의 우수

아무도
이 무게를
들어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얼굴은
능히
이를 감내한다


아무렇게나
움켜잡아
내꼰지는
크레인일 수는 없지만


나일강의 흙탕물을 들이켜고도
말없는 스핑크스처럼

 

 

덤/김광림

 

나이 예순이면 살 만큼은 살았다.

아니다 살아야 할 만큼은 살았다.

이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더 살면 덤이 된다.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종삼(宗三)은 덤을 좀만 누리다 떠나갔지만,

피카소가 가로챈 많은 덤 때문에

중섭(仲燮)은 진작 가버렸다.

 

가래 끓는 소리로 버티던 지훈(芝薰)도

쉰의 고개턱에 걸려 그만 주저앉았다.

 

덤을 역산(逆算)한 천재들의 밥상에는

빵 부스러기 생선 찌꺼기 초친 것 등 지친 것이 많다.

 

그들은 일찌감치 숟갈을 놓았다.

 

소월(素月)의 죽사발이나.

이상(李箱)의 심줄구이 앞에는

늘 아류들이 득실거린다.

 

 

누군가 들이키다 만

하다 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덤은 시인 김광림의 후기 대표작이다. 김광림은 시력 50년을 넘는 현재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시인이다. 많은 시인들이 조로해 버리거나 일찌감치 대가 풍에 젖어 작품에 등한해 버리는 한국 시의 풍토 속에서 김광림은 시의 길에 전념함으로써 시인적 삶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가 시작 40년 만에 낸 10번째 시집 [말의 사막에서]에 수록된 위의 시 [덤]은 예순의 시점에 그가 쓴 시로 ‘시’에 대한 사랑과, ‘예술가’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일찍 요절해버린 그런 예술가들이 힘겹게 살아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천재적인 그들의 시를 따라 쓰는 아류만 가득한 풍토를 나무라고 있다.

 

그는 예순이라는 나이를 요절과 덤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보았다.그의 시는 60의 나이에, 요절한 예술가들을 돌아보며 자기를 성찰하는 척 덤덤하게 시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 매우 냉소적인 풍자가 들어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누군가는 이 시에 대해 ‘적게 살고 많이 살고에 집착하지 않고, 60이 넘은 삶을 덤과 같이 생각하며 소박하게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해석하고 그를 ‘인생에서 해탈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이 시에 위대한 시인이 인정받지 못하고 일찍 죽을 수밖에 없게 만든 세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시에는 단순히 위대한 예술가들의 ‘요절’만이 다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요절의 근본적인 이유-. 왜 그들이 요절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시 안에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그들의 예술적 역량이나,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예술 풍토. 거기다 현대 시인들은 그런 그들의 정신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허섭한 아류시 만을 쏟아내고 있다.

 

시인이 마지막 줄에서 ‘누군가 들이키다만 하다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는 말에는 아이러니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이제부터 덤으로 살겠다는 말은, 시의 맨 처음에 말했던 ’60의 나이를 넘겼으므로, 덤의 나이를 얻었기 때문에 덤으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시를 표면적으로, 1차적으로만 해석한 것이다. 사실 그는 60살 이후의 삶을 더욱더 열정적으로 시의 세계를 위해 쓰겠다는 말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은 중섭, 지훈, 소월, 이상과 같이 요절하지 않고 덤을 얻었으니, 그들의 정신세계를 이어받아 더욱 시의 일에 매진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란 유사성의 부정에서 오는 것이다. 유사성의 부정은 자아와 세계의 차이성에 대한 관심의 집중현상이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거리’. 화자가 추구하는 세계는 중섭 같은 화가와 종삼과, 지훈과, 소월과, 이상 같은 시인들이 사는, 그리고 그런 예술가들이 천대받거나 굶주리지 않고 인정받는, 수준 높고 풍요로운 예술의 풍토. 그러나 현실은 그런 위대한 예술가는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배고프게 살다 죽어갔고 아류들만 가득하다. 시인은 이런 풍토를 시침을 뚝 떼고 아이러니컬하게 비판한다. 2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부터 마지막 연까지 시인은 에이런의 모습을 숨기고 알라존의 모습만 보여준다. 표면에 나타난 퍼소나는 시인이 원래 하고 싶어하던 말의 반대말만 한다. “맹물이라도 마시면서 덤으로 살겠다”.......고.

 

그러나 3연에서 그가 우리의 예술 풍토에 대해 언급한 것과, 4연에서 그가 죽은 시인들의 아류만 가득한 세상을 언급한다는 것은, 설령 시 내에서 직접적 가치판단이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명 비판과 풍조의 어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알라존의 모습 뒤에 숨겨진 에이런의 모습을 금방 추측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정말 어떤 이의 해석처럼 죽음의 번뇌에서 벗어나서 60 이후의 삶을 덤이라고 생각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이라면, 이런 시 풍토에 대한 비판이 이 시안에 들어있을 리가 없다. 그는 60 이후의 인생이 덤으로 사는 나이일지 몰라도, 덤으로 살진 않겠다고.덤을 살아가는 동안 더욱 열심히 열정을 쏟아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자신의 이상과 분열된 세계를 철저히 비판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아이러니는 낭만적 아이러니에 속한다. 낭만적 아이러니는 현실과 이상의 대립의식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비록 시에서는 덤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알라존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서의 에이런은 지금의 시 풍조에 대해 차가운 어조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김광림의 시는 유난히 아이러니의 기법을 사용한 시가 많다. 그의 시 [쥐]나, [반도의 아픔 - 말없는 말]이 그러하다. 그의 시는 아이러니 미학의 일단을 보여주는 시로 평가 받는다. 게다가 그는 [아이러니의 시학]이라는 시론집을 내기도 했다. 시인으로서, 단 한 번도 시를 배반하지 않고 꾸준히 묵묵하게 시에만 전념해 온 그에게 불투명한 세상도, 아류작만 가득한 시 풍토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런 자아와 세계의 분열 앞에 그는 비판의 시를 쓸 수밖에 없었고 그 방법으로 아이러니의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시인은 언젠가 “피아노의 천재 쇼팽을 들어 흔히 사람들이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래서 시인으로 불리우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에 대한 자부심, 시에 대한 사랑. 그것이 이 시 안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출처] 김광림의 덤 - 아이러니의 미학|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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