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산책길의영시

이모르 2020. 12. 31. 22:22

 

 

 

 

 

 

연꽃 피던날/타고르


마음은 헤매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 바구니는 비어 있는데
그 꽃을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때때로 슬픔이 나를 찾아왔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
남녘 바람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감미로운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 아련한 감미로움은
내 가슴을 그리움에 고통스럽게 했고
그것은 내게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여름의 뜨거운 숨결로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가까이 있었음을
그것이 내 것이었음을
이 완벽한 감미로움이

내 자신의 가슴속에서
꽃피었던 것임을
그때는 정녕 알지 못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사랑 노래


어떤 허물 때문에 나를 버린다고 하시면
나는 그 허물을 더 과장하여 말하리라.

나를 절름발이라고 하시면
나는 곧 다리를 더 절으리라.
그대의 말에 구태여 변명 아니하며

그대의 뜻이라면
지금까지 그대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게 하리라.

그대가 가는 곳에는 아니 가리라.
내 입에 그대의 이름을 담지 않으리라.
불경(不敬)한 내가 혹시

구면이라 아는 체하여
그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나는 나 자신과 대적(對敵)하여 싸우리라.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할 수 없으므로.

- 셰익스피어의소네트 시집중에서 -

 

 

 

 

할렘강 환상곡- 랭스턴 휴즈


새벽 두 시에 홀로
강으로 내려가본 일이 있는가
강가에 앉아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일이 있는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이미 작고하신 어머니, 신이여 축복하소서
연인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잇는가
그 여자 태어나지 말았었기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할렘강으로의 나들이
새벽 2
한밤중
나 홀로
하느님 나, 죽고만 싶어
하지만 나 죽은들 누가 서운해 할까

 

 

 

기도 - 헤르만헤세


하느님이시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것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 하는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자아가 송두리째 부서지거든
그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청춘 - G.Benn


갈대밭에 한 소녀가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소녀의 입을 무언가가 갉아먹은 듯했다.
가슴을 열었을 때 식도에는 구멍이 많이 나있었다.
마침내 횡경막 아래 한 亭子에서
어린 쥐들의 보금자리를 찾아냈다.
작은 암컷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다른 쥐들은 간과 신장을 먹고 살고 있었고,
차가운 피를 마시고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청춘을 여기서 보냈다.
그들의 죽음도 아름답게 그리고 빨리 왔다.
그들은 한꺼번에 물속으로 던져졌다.
, 그 작은 주둥이들의 삑삑거리는 소리라니!

 

 

 

 

 

희망은 날개 달린 것 - 에밀리 디킨슨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 가운데 앉아
가사 없는 노래 부르네
그치지 않는 그 노래

모진 바람 불 때 제일 감미로워라
많은 사람 따뜻이 감싸준
그 작은 새 당황케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매서운 폭풍이리

나는 가장 추운 땅에서도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 들었네
하지만 아무리 절박해도 그것은
내게 먹이를 달라 하지 않았네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나무들 조이스 킬머

 

기도의 나무로 서서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런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대지의 단물 흐르는 젖가슴에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온종일 하느님을 보며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엔 머리칼에다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치는 나무,
가슴에 눈이 쌓이는,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사는 나무,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뿐.

 

 

 

오디세이아 - 호메르스
 
말해다오, 시신(詩神) 뮤어즈여,

트로이성을 함락시킨 후
오랜 동안 천하를 방랑한 영웅의 이야기를.
그가 알고 있는 많은 도시와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고 자신의 생명과 전우들의 귀환을 위하여
망망 대해에서 견디어 낸 수많은 고난을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그의 부하들을 모두 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맹목적 행동으로

결국 파멸해 버린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 태양의 신의

신성한 소들을 잡아먹었으니.
하이페리온 신은 그들의 돌아갈

날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노래하라, 제우스의 따님이시여, 그 방랑자의 이야기를
가혹한 파멸을 면한 그의 동료들 모두가
전쟁과 해난의 위험을 무사히 피하여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도 그의 아내에게 돌아가기를 애타게 원했으나
여신 칼립소, 어여쁜 님프가 그를 그녀의 동굴에 붙들어
그를 그녀의 남편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어 신들에 의해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으로 정해진 해가 돌아왔을 적에도
그는 고난과 역경을 떠날 수가 없어서

그의 부하들을 데려올 수 없었다.
신들은 그를 동정하였으나 단지 포세이돈만은
신으로 보이는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가의선인문(영화대부주제곡)  (0) 2020.12.31
마광수교수의시몇편  (0) 2020.12.31
접시꽃당신(도종환)  (0) 2020.12.31
오형근의소(흥천사 꽃길)  (0) 2020.12.31
부부학개론(고경숙)  (0)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