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
전동차를 탄 오누이
초등학생 누나가
제 무릎 위에 앉힌
유치원 동생을
두 팔로
꼬옥
껴안으면서
말한다
"안전벨트 했다."
ㅡ김춘남(1955~ )
마음을 쏘옥 끌어당기는 영화 한 장면 같다. 삽화 한 컷,
사진 한 장과 같다.
이렇게 다정해 보일 수가! 전동차 안에서 유치원 동생을
무릎에 앉혀 꼭 껴안고 있는 초등생 누나의 모습이.
껴안음은 통로다.
따스한 사랑의 통로. 이 오누이에겐 핏줄 통로다.
기특해라, 안아 주고 싶은 오누이. 대견해라, 어린 누나.
동생을 껴안곤 '안전벨트' 했단다.
어른들의 가슴을 마냥 데우고 적셔 준다.
옛날엔 부모가 일찍 세상을 뜨면 누나나 형이
그 빈자리를 대신 메웠다.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안전벨트 장치였으리라.
부모와 형제는 서로 안전벨트가 돼야 한다. 그럴 때
가족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
이 오누이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안전벨트 노릇을 하고 있는가?
맑은 날
아이가 울면서 갑니다.
아빠한테 혼나면서 갑니다.
그래도 아빠 손은 놓지 않고
아빠 얼굴 한 번 봤다
제 눈물 한 번 닦았다
하면서 갑니다.
―정광덕(1971~ )
아, 티 없이 맑은 어린이. 아빠에게 혼나면서도
아빠 손을 놓지 않는. 혹시 아빠가 떼어놓고 갈까 봐
아빠 얼굴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어린이. 그러면서
눈물을 쓰윽 닦고 아빠를 따라가는 어린이. 에이
아빠도, 아이를 이렇게 심하게 야단치다니.
어린이는 꾸중 듣고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미움이나 원망의 눈빛이 없다.
이런 맑은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동심에만 존재한다.
어른들 세계를 보라. 싫은 말 한 마디에도 그만 마음눈
흘기면서 싸늘히 돌아서 등을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이 동시는 말한다. 어른들은 좀 배우라고.
싸우고 눈물도 채 마르기 전에 마주 보고 웃음 건네는
어린이들에게서. 오, 그런 아이를 구타하고 학대해
목숨까지 앗아가는 부모도 있다네.
무서운 세상에, 동심이 연출한 '맑은 날'의 풍경이
더없이 맑아 보인다. 제목이 왜 '맑은 날'이겠는가
소와 염소
소가
아기 염소에게 그랬대요.
"쬐그만 게
건방지게 수염은?
또 그 뿔은 뭐람?"
그러자
아기 염소가 뭐랬게요?
"쳇
아저씬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 덩치에 아직도 '엄마 엄마'게…."
―손동연(1955~ )
동물 우화 시이다.
소는 어른인 자기에게도 없는 수염과 뿔을 가진
아기 염소가 눈에 거슬려 "쬐그만 게/ 건방지"다고
트집을 잡고, "또 그 뿔은 뭐람?" 나무란다.
염소도 '아기'이지만 덩치가 몇 배나
큰 소 '아저씨'에게 맞선다.
"쳇 아저씬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 덩치에 아직도 '엄마 엄마'게…
" 하하, 웃음 깔린 다툼이다. 동심의 눈은
다툼에도 웃음을 담아낸다. 염소는 '아기'여도
수염이 달린 게 본래 모습이 고, 소가
'아저씨'여도 울음소리를 '음머 음머(엄마 엄마)'
내는 건 당연한 일. 천진난만한 어린이
눈에 비친 유머러스한 염소와 소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웃고만 있기 어렵다. 타고난
겉모습이 놀림감이 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개성으로 존중받아야 옳다는
시인의 의도를 읽게 되면 갑자기
마음 서늘해지며 깊은 성찰에 잠기게 된다.
박두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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