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천상병의막걸리

이모르 2020. 12. 31. 22:56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천상병 '막걸리' 모두

 

 

 

 

 

막걸리/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생전에 많은 이야기

거리를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문학계의

기인 중 기인이었다.

그 중에서도 살아있는 시인이면서

'유고시집(遺稿詩集)'을 냈던 사람은

아마 세상에서 천상병 시인 밖에 없을 것이다.

 

 

1967년 동백림 사건 재판 현장.

이 사건의 1심과 2심에서는 사형을

포함하여 중형이 선고됐으나

대법원에서는 간첩죄 부분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1967년 당시 우리나라는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공작단 사건"

이라는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떠들썩 했다.

정부에서는 북한과 은밀히 연루되었다고

하여서 죄도 없는 예술인들이나

문인(文人)들을 대거 체포하여,

남산에서 그야말로 덮어놓고 고문부터 해서

사람 병신으로 만들어 더 이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일이 자행되었다.
그 사건에 천상병 시인도 연루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모습은 고문 당시 얻은

휴유증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심한 질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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