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로마군의놀라운신발

이모르 2020. 12. 13. 13:43

 

 

 

2000년 전 로마군대의 복장이 어땠는지 우리는 <벤허>나 <글래디에이터> 같은 영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금속제 투구를 쓰고, 금속이나 가죽 흉갑을 대고, 정강이 보호대를 찼습니다. 무기는 칼과 창, 방패같은 것이죠. 장교는 붉은 색 망토를 두르고 투구장식을 화려하게 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신발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십시요. 로마시대의 군화를 복원한 것입니다. 바닥은 가죽을 여러 겹 덧대고 금속 스파이크까지 박았습니다. 그런데 발등과 발목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런 신발을 신고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요?

 

 

 

 

아래 사진은 트라야누스 원주(圓柱)의 일부입니다. 로마 병사들이 진지 구축작업을 벌이는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군화 밖으로 발가락이 다 드러납니다. 발이 온전했을까요? 다른 복장은 실용성과 멋까지 겸비하고 있는데 신발은 왜 저렇게 부실한 걸 신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 반도는 샌들이 어울리는 기후입니다. 날씨는 사철 온화하고 비도 그리 많이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쪽의 알프스를 넘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게르마니아(독일)는 뼈가 시리게 춥고 브리타니아(영국)는 수시로 비가 내립니다. 위의 원주에 묘사된 것은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전쟁을 치른 내용을 묘사하고 있는데, 병사들이 원정했던 곳은 오늘날의 루마니아입니다. 결코 온화한 지역이 아니죠. 사정이 그런데도  왜 저런 신발을 신었는지 이해가 안됐던 것입니다.
 
이런 의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쪽 잘부르크(Saalburg)의 로마시대 유적을 방문했을 때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잘부르크는 로마시대에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건설한 '리메스(Limes)'라는 방위선이 지나가던 곳입니다. 그곳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멋진 가죽신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은 놀라움 자체였습니다.
고대의 군화를 그대로 복원한 로마시대 신발이 선반에 얹혀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오늘날의 목짧은 부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투 현장의 상황을 고려한 기능적 디자인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우선 신발끈을 매는 앞부분이 지그재그로 터져 있습니다. 흙이 신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죠. 뒷부분에는 신발을 신을 때 당기는 손잡이가 큼직하게 붙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캐주얼화가 그대로 채용하고 있는 기능입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금속 스파이크가 가득 박혀 있습니다. 이 신발을 보고 비로소 고대 로마 군인들이 그 부실한 샌들로 거칠고 얼어붙은 땅을 내달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말단 병사까지 모두 이런 신발을 신지는 못했겠지만요. 아래 사진을 보십시요.  원래의 유물과 복원한 신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신발 곁에 전시된 또 다른 고대의 신발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대의 병영에서 발견된 신발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십니까? 몸통 전체에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동그란 구멍을 빈틈없이 뚫고 구멍 사이의 빈 공간에는 미세한 장식을 했습니다. 발등은 동그랗게 노출되어 있고 끈을 당기면 부드럽게 졸리도록 신발끈이 발목을 감싸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대라 해도 하얀 피부를 가진 귀부인이 매끄러운 대리석 저택에서나 신을만한 신발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발이 최전선을 지키는 병영의 군인들(아마도 장교였겠지만)이 신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가죽 제품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을까요? 신발이 발견된 곳은 우물이었습니다. 빛도 들지 않고 공기도 차단된 우물속의 축축한 진흙은 타임캡슐의 기능을 해 로마 군인의 신발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청소하기 위해 우물속으로 들어간 병사가 '아차'하고 빠트린 모습 그대로, 어느 봄날 공차기 하던 장교가 '어어'하며 실수로 빠트린 모습 그대로. 

 

 

 

원문출처: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jd23&folder=11&list_id=11266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