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방

혼인빙자간음죄

이모르 2021. 1. 5. 18:27

 

 

 

지인 중에 가여운 여인 N은 가난한집 아들 사관생도와

사랑에 빠졌는데 유명 관광회사 직원으로 美 와 知를

갖추 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택하게 되면서 그를 만나게되었다.

 

결혼을 전제로 그의 부모들 까지 온갖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 하게 된다.

그과정이 자신의 남동생들이 대학을 가고 싶어해도

지원해 주지 않고 예비 시댁 시누이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친가와 갈등을 빗게 되면서도 여전히 남자에게

헌신하게 되었는데 몇 번의 낙태수술로 몸은 쇄약해져 갔다

 

임관 하게된 장교는 국비로 S대학 대학원 코스를 밟으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거기서 집안환경 좋은 규수를 새로 사귀게

되고 기존의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을 박대하며 멸시하고

질리게 만들어 다른여자와 결혼 하고 만다.

 

 

 

N은 다른 사람과 결혼은 하였으나

그 후유증이야 말로 너무 심각하여

 

 

알콜중독과 우울증으로 폐인이 되다 싶히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감수 해야하는 엄청난 모순 의 N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보석은 항상 기도한다

가여운 친구에게 은총을 내리소서!!!!!!!!!!

 

 

2009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위헌 재판에서 재판관들은

6대3의 의견으로 혼인빙자 간음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304조가 위헌

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최근 정부에서 확정한 것으로 알고있다.

 

 

여성조선

취재 하상원 기자 :사진 안호성 

 

 

 

 기사를 일부 인용해보면

 

정조도 스스로 지길의지가 있는여성만 법으로 보호를 받을수 있다는

유명한 박인수 사건을 인용해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혼빙간 사건, 희대의 카사노바 ‘박인수

 

1950년대 6.25전쟁이 끝날 무렵, 전쟁이 남긴 상처와 혼란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방종한

풍조가 흐르고 있었다.

 

 

 

 

희대의 카사노바로 불리며 세인들을 경악케 한 ‘박인수 사건’은 이런 세태 속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 박인수 사건은 박씨가 애인의 배반에 대한

복수심에서 당시 한창 유행하던 댄스를 무기 삼아 약 1년 동안 70여 명의 여인을 농락한 사건이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행적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특히 그에게 농락당한 피해자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당시 사회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다고

평가받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더욱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렇게 많은 여성들을 농락한 박씨는 1955년 5월 31일 검거돼 같은 해 7월 22일,

언도공판에서 공무원 자격 사칭행위에 대해서만 벌금형을 받았고,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특히 그가 법정에서 “내가 상대한 70여 명의 여인 가운데 처녀는 단 한 명뿐이었다”고

한 말은 당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발언이라 평가받는다.박인수 사건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보호하지 않는 여성의 순결은 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자유부인’, ‘사모님’등의 유행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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