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가우멜라 전투이야기(쥬페 경기병서곡)

이모르 2021. 1. 7. 16:04

 

 

폼페이 목신의 집에서 발견된 타일모자이크화

바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와 페르샤의 다리우스3

의 전투장면은 그 예술성이 뛰어나다

 

세상이 이스람으로 통일되는 이스람이 지배 하는세상이

될뻔한 위기의 전투는 고대에서부터 시작된다  

1.2차 원정에 실패한(다리우스) 것을 설원하고자 10년뒤 다리우스를

계승한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부왕의 뜻을 이어 3차로 그리스를 침공하게

되는데 살라미스 해전 과 플라타이아(기원전479) 전투와 미칼레(기원전

479)전투에서 그리스는  대승을 한다

특히 살라미스해전으로 페르시아의 서방 진출이 좌절되고

역사상 최초의 民主主義가 살아남게 된것이다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의 해전 (일명 ​​Issus의 전투) 파운,

폼페이, 복사의 집에서,발견

모자이크, 8'11 "X 16'9 .5", 1 센트. 기원전

(국립 박물관, 나폴리) :

 

 

  

이탈리아 폼페이 목신의집벽화

 

 

 

알렉산더와 다리우스는 가우멜라 전투에 앞서 이수스 전쟁을벌린다

이수스 전투의 장면을 묘사한 벽화의 왼쪽 말을 타고

추격을 하는 사람이 알렉산더 오른쪽 수레를 탄사람이

다리우스다 이 벽화는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잿더미속에

파묻혔다가 폼페이 목신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이어 벌어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대승을 거뒀다

 

 

영화의 한장면 다리우스

 

알렉산드로스의 공격도

 

 

 

다리우스 3(기원전380년 ~ 기원전330년 ) 

페르시아어 다리우슈)는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기원전336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재위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폐위되었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기원전에 페르시아 제국의 환관이자 군인인 

바아고스는 구테타를 일으켜 아르타크세르크세스3세를 

처형하고 2년 후에는 유배된 그의 아들 아르세스마저 처형했다.

 

바고아스는 자신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자를

왕에 앉히려고 왕가에서 갈라져나온 먼 친척인

코도만누스를 지정하여 왕에 임명했는데

그가 바로 다리우스 3세이다.

 

다리우스 3세의 아버지는 아트라크세르크세스의

조카였고 어머니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딸인 사시감비스 였다.

 

다리우스 3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야심많은 환관의  바고이스

영향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했고 쿠데타를 꾸몄다.

이 말을 들은 바고아스는 독배를 왕에게 주어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 했으나, 다리우스는 그 잔을 도리어 바고이스에게

주어 죽였다.

 

다리우스 3세가 즉위했을 때 제국은 불안정하고 많은 땅을

지배하고 있는 속주 총독들은 질투심이 많고 믿을 수 없는 상태였다

기원전 337년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2세는 페르시아.

지배 아래에 있는 그리스  도시들의 해방을 위해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하고, 이듬해 소아시아 에 선발대를 보냈다. 그러나 그해 7월에,

그는 배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암살당했고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뒤를 이었다 기원전 334년 봄에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이끌고

 

다르달네스 해협을 건넜다.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채, 이들을 맞은 페르시아의 군대는 속주총독들이 맞서

싸웠으나

그라니코스강 에서 패배했다. 다음해 알렉산드로스는

소아시아의 대부분을 점령한 후,킬리키아 까지 진격했다.

기원전 333년에  다리우스는 직접 페르시아 내륙에서

대군을 모아 출전했으나 11월 이수스 에서 패배해 도망쳤고

그의 어머니인사시감비스  와 처자식들이 알렉산드로스의

포로가 되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에게 강화하자는 편지를 2번이나

보냈고 마케도니아와 페르시아가 동맹을 맺는 조건으로 막대한

재물을 주고,유프라테스강 서쪽에 있는 페르시아 영토를

마케도니아에게 모두 넘겨주겠으며, 자기 딸과 결혼하라고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러한 강화의 제의를 다 거절하고

메소포타미아로 진격했다.

 

이에 다리우스는 마케도니아  군이 유프라테스강 과 티그리스강을

건너게 하고 기원전331년 기원전331년 10월1일 에 지금의

기원전331년 10월1일에  지금의 이락크모술 

동쪽에 있는 가우가멜라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크게 패해서,

엑바타나로 피난하였고 알렉산드로스 가 추격하자 다시

동쪽으로 박트리아 까지 피난하였지만 자신의 부하이자

바고아스의 친척이었던 베구비 일파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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