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신다
세계 영적인 지도자의 방한을 축하하며
박해받던 초기 기독교 신도들의 일면을 생각해본다
1984년 5월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김수환 추기경 생전모습
2014년8월14일 방한하는 교황 프랜시스
전주 전동성당터 에서 순교한 한국최초의 순교자 동상
오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시복식은 지난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교황으론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큰 내한 행사. 시복(諡福)은 신앙과 덕행을 인정받아 천주교회가 공경할 대상으로 모시는 ‘복자’(福者)의 칭호를 허락하는 것으로, 이번 시복식은 순교자의 땅에서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의미있는 자리다. 전세계 150여개국에 방송되는 초대형 행사로 천주교 신자와 일반 시민 등 100만 명 이상이 운집할 예정이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치중은 서릿발 같은 박해 시절 전통 제사를 천주교 식으로 지내 순교했다
우리의 사상속에 애국 애민의 정약용 선생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4형제로 배다른 맞형 정약현 .친형제 정약전.정약종.정약용은 막내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정경한의 가계도를 소개한다
정난주(명련, 마리아)는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장녀로서,
15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에 급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던
황사영(알렉시오)의 부인이다.
황사영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천주교도들을 처형하자
충청도 배론으로 피난하여 은거하면서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조선천주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 하면서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그는 백서 발송되기 직전에 체포되어 그의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에,
아내 정난주는 제주 관아에 노비로 유배가 결정되어
남편 황사영은 서울에서 능지처참 당하고 아내 정난주는 두 살 아들
경한을 안고 제주로 유배중이었다 .
정난주의 배가 추자도를 지날 때 궁리 끝에 정난주는 호송선의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고사공은 다시 두명의 나졸에게 술을 먹여 그들을 매수한뒤
섬동쪽 갯바위에 아기를 내려놓고 제주도로 갔다
아들만큼은 노비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어 수장했노라고 변명하여 무사히 넘어갔다
그래도 모자는 평생 재회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아들에게 화가 될까 염려한 정난주의 모성애다.
정난주는 제주대정에서 관노로 38년을 더살고 세상을 떠났다
아기는 추자도 예초리 어부 오씨가 거두어 제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경한이 성년이 되자 오씨는 꼭꼭 숨겨두었던 내력을 들려주었다
하추자도에 남겨진 경한은 오씨(吳氏) 성을 가진 한 어부의 손에 의해 거두어졌다.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뜨려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에 의해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되었고 오씨의 아들로 키워졌다고 한다.
오씨의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 건섭(建燮)과 태섭(泰燮)을 낳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결혼을 않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한다
추자도 올레길 하도 끝자락 언덕에 황경한의 묘가 성지처럼 꾸며져있다
그는 위업은커녕 선행도 딱히 전하는게 없는 남쪽 외딴섬 무명씨 어부다
하지만 그의 무덤은 2011년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성지로 만든 것이다
묘비에는 “순교자 황사영 신앙의 증인 정난주의 아들 황경한의 묘”
라고 적혀있다
정난주는 대정현 노비로 37년동안 고생하며 신앙을
지키다가 1838년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제주의 천주교 신자들은 정난주(마리아)를 신앙의 증인으로 존경하며,
그의 묘소를 성지로 꾸미고 그 신앙의 얼을 기리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바티칸 박물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심판 (바티칸)
경기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가마골
황사영의 묘역
제주도 정난주의 묘역
추자도 황경한의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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