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기

역사의고도 이스탄불 터키여행2부

이모르 2021. 3. 17. 17:48

 

 

 

 

보스포러스 상공 일몰의 아름다움  

 

 

2011년 5월 24일 부터 6월 3일 까지

터키여행

 

 

 

10시간 넘게 비행기 속에서 친구들은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잠이 오지않고 창측에 앉아 미지의

여행지 역사책 화보로 보던

소피아 성당 에페수소 를 상상하며  

창밖세상을 바라다 보고있었다

바비안 계곡의 거대불상 을 우상이라며

폭파해버린 과격한 타라반

과는 차별화 되어 수많은 유적들을 보존 해 왔던 터키

국민 들을 느끼며 !! 

밖이 보이는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눈덮힌 산악지대 부터 망망대해 까지 연결 지은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 경작지 

비행체 밑으로 전개되는 구름 모든 것이

지루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드디어 그리던 이스탐불 상공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친우 부부동반 6명은 이스탐불 근접한 비행기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터키 시간 20 30분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태양은 모습을

감춰가고 일몰의 아름다움은 낭만을 연출한다  

시차 때문에 서울은새벽 일것이다

 

 

 

 

터키 여행중 느끼는 첫 인상은 국기가

많이 게양돼 있었다.

언덕에도 들판에도 건물마다

그것은 한때 항가리등 유럽  남쪽 으로는 예멘

동쪽으로는 아제르바이젠 북쪽

우크라이나 서쪽 모로코 까지 통치하였던 오스만

제국의 자존을 나타내고 싶은 것일까!!!!

 

유람선의 춘성군 부부

 

 

 

 

 

 

터키 국민은 달과 별이라는 뜻의

아이 일디즈(ay yildiz)’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BC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세(軍勢)가 비잔티움(이스탄불)

성벽 밑을 뚫고 침입하려 했을 때 초승달 빛으로 이를

발견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전설을 그리고 있다.

마호멧이 초승달 밑에서 진리를 깨달아 그런 국기를 만들었다고

가이드는 설명하는데

그밖에 1398년의 코소보전투가 끝난 후 피바다 속에 나타난

신비로운 달과 별을 가리킨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기의 기본 형태는 술탄인 셀림 3세가 지배하던

1793년경에 나타났고,

1844 별이 추가된 이래 국기로 사용하여

왔으며 1936 6 5일 추인(追認)하였다.

가로세로 비율은 3:2. 튀니지의 국기와 비슷하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터키는 구급차에도 십자가는 없고

초승달이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스탄불의 역사를 간추려 본다면 아래와 같다

이스탄불은 B.C.667년 지도자의 이름을따

비잔티움이라 하였다

B.C.6세기경비잔티움은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B.C.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 바케도니아 지배

B.C.146년 동으로진출해온 로마제국의 통치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 누스 1세 황제에의해

콘스탄티노풀 이라 칭해졌다

395년 로마제국 동서로 분리

콘스탄티노풀 동로마 수도

1261년 비잔틴 독립

1453년 오스만 제국 에게 정복당함

1922년 오스만제국 멸망

1925년 그리스어로 도시를 향하여란

이스탄불로 개칭되었다

첫날 아침 평화롭고 날씨 음식 순수해보이는

터키인들 모든 것이

만족한 상태였다

아침식사후 보스포러스 해협으로 이동하는

버스 차창밖으로 기원전에

만들어져 허물어 진 성벽들이 보이면서

역사스페셜에 소개된

수로가 눈에보였다.

이스탄불은 2천년전 동로마제국의수도

콘스탄티노풀은 인구 밀집으로 물부족

현상이 있 19km 덜어진 강물과

지하수를 끌어오는 수로를 건설하여 물을

공급하는 수도 시설이 갖춰저있었다

 

 

25일 유람선으로 이동중 만난 수로

 

 

 

 

 

유스티아누스 1(517-5650황제 시대인 527년에  

아야소피아성당과 황제 궁전에 필요로하는 물을 저장하기위해  

만든물저장저수지  메투사의 머리가 꺼꾸로 있다

 

곳곳에 무너진 성채와 성벽들이 보인다

보스포로스 해협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유람선에 승선하였다 

블루모스크를 바라다보며 좌측이 구도시 유럽이고 우측이 아시아다

 

 

 

 

 

 

 

 

해협으로 항해중 가이드는 암소로 변해 이오니강을

따라 보스포로스 해협에서 머물다이집트로 건너간

제우스의 애인 이오와 헤라 공작새로

변한 아르고스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 하는데 !!!

보스포러스의 뜻은 "암소가 지나가다"라는 뜻으로

제우스는 아르고스왕의

딸인 이오와 서로사랑하여 임신을 시켰는데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심술이 무서워

연인 이오를 암소의 형상으로 만들어 숨겼다

눈치를 챈 헤라는 말파리로 변신하여 암소모습이된

이오를 괴롭히자 이오는

불쌍하게도 풀을 뜯지 못하고 계속 도망 다니다

이스탄불로 오게되면서 보스포로스해협 으로

칭하게 되었다 한다

또다른 말로 터키를 이오니아라고 불리우게 된다

 

 

 

 

 

 

 

 

 

 

 

 

 

돌마흐체궁전과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 숙박했다는

궁전 부속 호텔을 보고 이국의 정취에 한것 졌어 있었다

 

 

선상에서 보는 유럽쪽소피아성당과 술탄아흐렛 사원

 

 

보스 포로스 해협 항해중 낭만적인 풍경

 

 

 

 

 

 

 

 

선상에서 보는 아시아쪽 풍경 유적과 현대양식이 어우러져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술탄 압둘메지드 시대인 1843-1856년 사이 건축가 가라베트바얀이건축한 궁전으로 터키국부인 아타 투르크는 이궁전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한다

 

가이드가 가르키는 대로 간단한유적 일지라도  보통 기원전의 역사를 가졌다

 

 

 

 

 

가이드가 가르키는 곳은 크즈클레시(처녀의성)이다이스탄불 해엽과 마르마라해에 닿는 곳인 하렘과 살라작 연안의

바위위에 세워진 등대섬이다18m높이의 이탑은 대대적인 보수를 거처 관광객에게 개방 되었다 B.C410년 이테네지휘관 인 알키비아데스가 흑해에서 마르마라 해협을 통과하는 선과 상선들을 통제하기위하여 살리작 연안의 돌섬에 감시탑을 세웠다동로마 제국의 마누엘콤네노스1세(1143-1180)황제시대에 감시탑을 사각형증축하였다 1453년 오스만투르크가

이스탄불 정복후 등대섬으로 활약하다화재로 회손 아흐멧3세(1703-1730)가 다시 세웠고술탄 마흐멧 2세(1808-1839) 대대적인 보수 하였다  크즈클레시는 다양한 전설의 무대가 된다는 말이다....

 

크즈클레시(처녀의성)의 내부그림 (아래)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007 시리즈의'World is not enough!!"에서 악녀로

나온 소피 마르소가 근거지로 이용하던 등대이다.

 

 

 

 

이 크즈쿨레시에 전해져 내려오는 공주의 전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강 이렇다.

태어 나면서 마음씨 나쁜 마녀에 의해 16세를 넘기지 못하고 뱀에 물려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은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왕이 공주를 그 탑에 데려다 놓고 길렀는데,결국 16세 되던 생일날 저주에서 풀려난 것을 축하하기위한 과일 바구니에 숨어 든 뱀에게 물려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고 한다

 

 

 

 

양대륙을 잇는 보스포로스 다리

 

 

 

인류 세계사를 뒤 바꿔 놓은 루멜리 성

 

 선상의6인

 

 

 

 

톱카프 궁전으로 이동 하였다

 

 

톱카프 궁전은 파티흐 술탄 메흐멧 시기인 1472-1478년 사이에 건립되어 4세기에달하는 기간 동안 황제통치의 중심지와 이스람교 군주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린다1856년 술탄압둘 메지트가 돌마흐체 궁전으로 이전후 버려지게되어 현제는 박물관으로 쓰여지고 있다 한다

 

 

 

 

궁전앞에 있는 우물

 

 

 

 

 

 

정문앞에 있는 불경한 사람들을 가둬 죽이고 목을 전시하는 전시관

술탄들이 권위와 규율을 강조하기 위하여 반역 흉악범 들의

목을 처서 궁전앞 뜰에 전시하고 많은 내방객 들에게

경각심 을 주기위한 전시관이다 우측은 죄수를 가두는 관이고

좌측은 목을 전시하는 받침대이다

 

 

 

 

 

정문 경비병

 

 

 

 

 

초입에 전시된 톱카프 성내 배치도

 

 

강성했던 오스만제국의 영토 표시

 

전시된 입체도

 

 

 

술탄이전 비잔틴시대의 성당 톱카프 성내에 있다

 

 

 

 

 

술탄들에게 진상되었거나 구매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가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줄서는 동안 포풀라 고목에 들어가 한컷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품

 

 

 

궁전 바닥의 화려한 문양들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수 있도록 차려진 조리실

 

 

 

 

 

톱카프궁전 발코니에서 보스포러스 해엽을 바라다 보며

 

 

 

 

 

화려했던 톱카프 궁전 에서 도암 부부

 

 

 

 

 

 

 

수도시설

 

 

 

 

 

 

각료들의 회의실 위 창문속에서 술탄이 회의내용을 엿듣기위한 도청 전송관

 

 

 

 

 

 

 

 

벽화 (신하들의 회의 장면인가?)

 

 

 

모자이크 타틸 벽화

 

 

 

매표소의 국부 초상화

 

 

 

 

아야 소피아 성당은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1세9527-537)년

사이에 약5년에 걸쳐 건립되었다.

트랄레스(아이든)출신 안데미우스와 밀레토스(발라트쇼케)

출신 안데미우스가

건축하였다 세계7대 불가사이에 들어가는 건축물이다

 

 

 

소피아성당의 외부전경

 

 

 

 

성당안으로 들어가면 그 중후하고 어머어마한 규모에 압도 당한다

 

 

 

 

 

 

소피아 성당내부의 위대함에 감탄한 착한 기독교인

도암은 다음과같이 말했다

 

소피아 성당이 이스람에 넘어가자 실지회복을 위한

수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발발했다

 

한번 원정에 30년씩도 걸렸으니 그부장용이 클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르기를 30년씩이나??? 그래서 정조대 까지 생겨난 것이로군!!

 

 

 

 

 

 

 

 

 

 

2층특별석  중앙은 황제와 황후가 예배를 보던 자리라 한다

황족들이 예배를 보던 자리에선 평보부부

 

춘성부부

 

 

 

 

 

 

 

 

 

마리아 아기예수 콘스탄티누스 1세(306-337) 황제와

유스티아누스1세 황제가 묘사되었는데 일부모자이크들이 떨어져 나갔다 모자이크 벽화는이스람들이 회가루로 덧칠해놓은 것을 복원하였는데 모두9세기 이후것이라 한다

 

 

 

 

 

 

 

 

 

 

 

 

 

소피아 성당내부에 있는 예수님 상의 모자이크벽화.

성 소피아 성당은 537년 12월 27일 완공되어 1453념 5월29일까지

성당으로 있었지만 터키가 트루크 제국에 함락된후

이스람 사원으로변신되었다 

 

이스람 사원이 된후 외부에 첨탑을 세우고 내부에 인물이 있는 모든

벽화는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5cm 두께로 석회칠을 하였다 

 

한동안 변신한 소피아 성당은 이스람사원으로 쓰여지다가 메카가

있는 동쪽을 향하여 있지않아 블루모스크를 건설하게된다 

 

1923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현재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터키국부 아타투루크 초대대통령이 비잔틴 학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벽화들을 복원 한 것이며 지금도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복원된 부분은 너무나 아릅답다

예수님상은 아래그림의 일부분인데 왼쪽의 성모님과 오른쪽엔 초원에서

고생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다.

 

 

 

 

 

 

 

 


마리아 아기예수의 모자이크

 

 

 

찬란한 건축술은 빈번한 터키의 지진에도 잘 견뎌내고 있다

 

 

 

 

베롱 나무

 

 

 

 

 

관람후 거리 가로수로있는 칠엽수 마로니에

 

 

 

 

 

 

 

 

 

소피아 성당 관람후

 

 

 

 

술탄 아흐엣 사원은 석양을 받으면파란으로 빛난다 하여 일명 불루 모스크라 한다

 

 

 

보스포러스 해협 에서 본 불르모스크

 

 

 

오스만 술탄 아흐엣1(1603-1617) 시대에 수석

건축가인 세데프카르

메흐엣 아이에 의해 건립된 사원은 1609년에착공

1617년에 완공되었다 한다

사원은 8개의 문으로 넓은 정원으로 둘러 싸여져

있으며 26개의 기둥과

30개의 둠으로 들어가기전 신발을 벗어야 하고 여성들은

노출을 가리기 위한 큰천을 빌려준다

 

 

 

 

불루모스크앞에 포즈를 취한 춘성부부

 

 

 

 

 

입장하기전 줄을서서 기다린다

 

 

 

 

 

 

 

 

 

 

 

 

 

현재 예배를 보는 사원안 뒷편에는 여성들의

기도실이 따로 되어있는데 이는

알라신께 절할때 여성특성상 신체를 노출시키면

않되는 배려이며 어마어마한

둠내부의 화려함에 감탄하게 되는데 수많은 참배자와

관광객의 발냄새로 골치가 아플정도이다....

이사원은 수세기 전에 만들어진 소피아성당을

능가하려고 지어졌는데 크기나 내부가

소피아성당에 못믿친다 하였다

 

 

 

화려한 내부

 

 

 

히포드럼 광장

 

 

오늘날 술탄 아흐엣 광장으로 불려지는 이광장은 원래

경마장 이라는 뜻을 지닌 히포드럼이었다 서기2세기에 로마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의 명령을 처음 세워져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훨씬 큰 규모로 중축 되었다

몇몇 역사가들은 이경기장의 수용인원이 3만명이라 하고

어떤 학자들은 6만명까지 할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히포드럼은 수백년간 원형을 유지하면서 콘스탄티노풀의 가장 중요한

기념건물 중 하나로 남아 있었으나 4차 십자군들이 1204년

도시를 점령후 히포드럼을

장식했던 모든 기념비와 장식품들을 약탈해 가면서 결국 제 기능을

잃고 버려지고 말았다

 

 

 

이집트 파라오 3세 투트모시스가

BC.1471년에 유프라데스강을

건넌것을 기념하기위해

카르낙신전 앞에 세웠던 오벨리스크인데

한덩어리의 어마어마한

분홍색 화강암에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390

데오도시우스 (398-395)대제때

이집트에서 콘스탄티노풀 로 가져와 히포트름에

세워두었는데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수만마리 양을 잡아서 가죽풍선

을 만들어 바다를 건너 부력으로 옮겨왔다 하니

믿을수 없는 눈앞의 현실에 감탄할뿐이다

 

 

디칼라티쉬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사면으로 되어 있고 상형문자가 새겨져있다

아래부분에는 389년에 만들어진 대리석 받침대가 있는데

100년 마다 한번씩 평균6.5의 지진이 이 도시를 강타했어도

이 오벨리스크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고 1,600년을 끄떡없이

서있다 이집트 파라오의 용맹성을 말해주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아래 받침대4면에는 황제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는데

황제가 자리에 앉아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것을 지켜보는 황제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오벨리스크가 눞혀져 있는 것을 로프를 매고

끄는 모습이 보인다 가운데 황제가 읹아있다

 


 

 


 상영문자

 

 

 

 

 

 

그리스 인들이 BC.479년 살라미스와 플라데이아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재패하고

 

흭득한 철제 전리품들을 모아서 녹여 만든 뱀기둥을

 

델피섬의 아폴로신전에 바쳤다

 

꼭대기에는 각각분리된 뱀의머리 위에금으로

 

된 직경 3m의 큰 냄비가 있었다.

 

콘스탄티노풀(306-337) 대제가 330년에

 

이기둥을 델피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세웠으며

 

기둥꼭대기에 있던 금 냄비는 소실되었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여기 있는 누구든 뱀의 머리부분을

 

찾아낸 다면 세계적 부호가 될것이라 말하였다.

 

 

 

히포드럼 남쪽끝의 기념탑은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라고도 하는데 히포드럼은 비잔틴시대에 전차 경기가

열리거나 기념식이 여리던 스타디움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나 데오도시우스1세가 세웠을것 으로

추정되는 32m의 탑인데 원래 조각을 새긴 청동판으로

덮혀 매우 아름다웠다 한다

청동판은 지금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바실리카 꼭대기에

서 있는 4마리의 청동말과 함께 제4차 십자군 전쟁때

약탈당한 것이다

제4차 십자군에 의해 청동이 벗겨져 회손되면서

원래의 아름다움 을 잃고 말았다

 

 

 

 

 

히포드룸에 있는 이분수는 술탄 압둘하미드2세의 집권15주년을  

기념해 독일황제 빌헬룸2세가 선물로 준것이다...

 

이스탄불 시르케지(SirKeci)역

 

 

인천항으로 귀향하기위하여 공항으로 운행중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가 손으로 가르키며 영화속의 무대인

시르케지 역 이라 한다

비잔틴 시대의 성곽은 오는날 부터 보였는데 

나는 그것을 찍으려고 질문을 하였다

? 그 많던 성곽과 성채가 보이지 않느냐

가이드는 웃으며 말하기를 이쪽으로 공항 가는길엔

성곽이 없다 하면서 여행에 대한 소감을 묻고 있었다

나는 성곽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노출시켜

들고있다가 시르케지 역을 촬영할수 있었다

애거사 크리스트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의 실제 무대였던

이스탄불 시르케지역은  1883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유럽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던

호화열차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파리 빈

부타페스트 등을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장거리 유럽 횡단 열차 였다.

시르케지역은 동쪽의 종착역으로 아시아 와 유

럽대륙을 잇는 지리적 특성으로

문학과 영화의 주요무대로 등장한다

현재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스탄불 외곽

그리스 그리고 불가리아 국경을 통과해

오스트리아 까지 서쪽으로 운행하는 기차를 탈수 있다 한다  

안녕 안녕 이스탄불 안녕 에페소 카파도키아

영원한 추억이 간직될

여행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