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기

신앙의신념데린쿠유 터키여행4부

이모르 2021. 3. 17. 18:53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20층 규모다. 관광객은 지하 55m인 8층까지만 내려갈 수 있다. 지하도시 내부는 개미집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통로는 좁고 낮다. 겨우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다. 층마다 방 부엌 창고 가축우리로 쓰였을 공간이 따로 있다. 예배당으로 보이는 십자 형태의 공간도 있다. 방과 방을 잇는 통로 끝에는 연자방아 모양의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다. 적이 침입했을 때 더이상의 진입을 막기 위한 장치다. 돌을 옆으로 굴리면 통로가 꽉 막힌다.

방과 방 사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이다. 고기를 굽는 
연기는 흔적 없이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는 빨아들이는 통풍구도 있다. 식수를 위해 우물도 파두었다. 긴급 시 다른 지하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비밀통로도 9㎞나 이어져 있다. 완벽한 지하도시다. 요즘 기술로 똑같이 만들 수 있을까.

공기조절장치

등 첨단 기술을 빌리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층을 내려갈수록 짙어진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주위엔 오래된 성당같은 것도 있고 이스람 사원도 있고

 

 

입구의 기념품 판매 상인들

 

개미집 같은 지하통로 도  

 

동굴입구

 

 

 

 

 

 

 

지금의 아파트모양 공유하는 삶터에는 분쟁과 罪가 없을수 없었다 양팔을 묶어 형벌을 주는 장소라는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언제 쓰여져 있었는지 모르지만 도처에 글씨의 흔적이 있습니다

 

 

 

환기구는 미로처럼 직선이 되어있지 않고 역학적으로 껵여있다

 

 

 

 

 예배를 보며 성직자들의 회의장소 라는 곳에서 !!!!

 

 

 

 

 

 

 

 

 

 

 

 

 

 

 

 

 

 

 

 

 

 지하 교회 앞에선 착한 그리스도인 도암은 경건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1960년대인가 한농부가 닭이 벌판에서 별안간 실종되어 수색중

발견하였다하는 장소 데린쿠유(DerinKuyu) 는 깊은 우물이 많은 마을이란 뜻이고

B.C 100년경 패잔병들이 갈곳이없어 목숨을 유지하기위해 만들어졌다하는데

네로 의 로마병정들의 박해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이 상하 좌우

엄청난 규모는 수직으로 85m 수평으로 9Km까지 연결된 곳인데 이지역에

이런규모의 지하도시가 36개가 더있다한다

 

 

 

 

 

고대의 유명한 작가인 제노폰(B.C.430-355)은 아나바시스라는 작품에서 지하도시

에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지역주민 들은 전쟁 또는 위험한 순간에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바위를 파내어 몇 개의 층으로 만들어 가축우리 환기통 기도실

학교 회의실 벌을주는 체벌장 포도주 저장고 등이 있었다 저술하였다는데 

26층으로 되어있다는 이곳은 현재 8층까지만 일반에 개방 했다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사람들은 동굴속에 갇혀 이성적으로 참아내지만

동물들의 히스테리는 포도주를 먹여 달랬다고 하고 들키지 않으려고 환기구도

연기가 몇백미터 밖으로 새나가게 만들어졌다하니 놀라지 않을수 없다

화산석이라 지하수가 거의 없었나보다 내려가고 좁은 통로를 지날 때 마다

머리가 부디치며 아파왔다 신앙의 힘은 위대하였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었던 입장이라 데린쿠유의 위치에 대해 입으로만 전해졌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한다 . A.D 313년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해방되었으나 두려움 반, 뒤늦은 소식 탓으로 400년경에 겨우 데린쿠유에서

나왔다고 한다. 계속되는 동굴 생활로 태양을 못 봐서 생기는 병으로 장애아가 많아,

어린아이들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빛과 바람이 통하는 통풍구 근처에서 살게 하는 등

육아에 어려움이 많았단다.

 

 

 

 

 

 

 

 

 

 

 

그리스인들의 집터

 

데린쿠유에서 카바도키아 로 가는 도중

가이드가 가르키는 언덕의 초라한 집터들은 그리스인들이 살던 집터라 일러준다

터키의 국부라 칭하는 게말파샤(Ataturk 1881.3.12-1938.11.10)는 1차대전의

패전으로 연합군의 식민정부 가 들어서고 먹을것이 없어 소요가 있을때 앙카라

까지 들어가 독립의지를 일깨워 터키반도 남부를 차지한 그리스를 몰아내고

차래로 연합군도 몰아내 지금의 터키를 있게한 국부라는 말을 들을때 TV에서

방영된 게말파샤에게 패한 그리스인들이 단 몇시간내에 그리스로 떠나도록

종용되고 비참하게 살해되는 다큐를 시청하게 되었는데 실지의 모습을 보니

급하게 떠난 자리엔 그리스인들의  고난의 삶의 의지를 볼수 있었다.

그리스와 터키는 우리네 대일 감정보다 더 골이 깊다한다.

 

 

 

데린쿠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