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큰가시고기와정철의교훈

이모르 2020. 12. 15. 16:35

 

 

수년전 제주도에 버려진 노부는

아들의 존재를 끝내 발설하지 않았다 합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아들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했던

부성애는 내리사랑의 슬픈 비애를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내 삶이 가시고기와 흡사하여

아래글들을 모아 위키백과에서 옮겨

편집한 글입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불효했던 지난날의 번뇌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정철(鄭澈) /어버이 살아실제

 

 迨我親在堂 謂當善事之

 於焉過了後 雖悔亦何追

 平生不可復 只此而已哉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현대어풀이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 섬기는 일을 잘 하여라.

돌아가신 후에 슬퍼한들 무엇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 부모 섬기는 일뿐인가 생각하노라.

 

 

 

조선 선조 때 정철(鄭澈)이 45세 때인 1580년(선조 13)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을

계몽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은 연시조 <훈민가(訓民歌)>

16수(首) 중 네 번째 시조로, 자효(子孝), 즉 부모님에

대한 효도 권유하는 내용이다. 살아 계실 동안에 부모

공경을 열심히 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훈민가>는

 

그 이름이 보이듯이 백성을 교화하고 계고(戒告)를 주되,

유시(諭示)나 포고(布告) 대신에 노래로 읊어서 익히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교훈적이기는 하나, 지은이의 놀라운

글 솜씨에 얹힌지라 은연중에 인정의

기미를 건드려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훈민가(訓民歌)>는 백성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은 것으로,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래 계속 강조되어온 것으로,

송순·주세붕에 의해 지어진 바 있는 훈민시조가

정철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정철의 <훈민가>는 내세우는 덕목은 전과 같았으나

정감 있고 순탄한 말로 인정과 세태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이 노래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따라 생활할 것을 권했으나,

민요의 사설과 같은 표현방법을 써서

지나치게 의도에 매여 있지 않는 느낌이다.

이 작품은 송강의 뛰어난 시적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문학적 기교와 세련미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정 철의 훈민가(訓民歌) 중의 하나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 효도를 다 하여라. 돌아가신 뒤에

슬프다고 울기만 하면 무엇 할 것인가.

사람 한 세상에 태어나서 돌이키지 못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효도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자효(子孝)를 가르친 작품이다.

 부모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 아버지나 어머니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받들어 모시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이를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아가신 뒤에

말로만 후회를 하지 말고,

차라리 살아 계시는 동안에 걱정을 끼치지 않고

마음과 몸을 평안하게 이끌어 드리도록

마음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 계시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때를 놓치지 말고 아들딸들은 노력해야 하겠다고

강조하는 하나의 경구(警句)의 형식으로

이 시조는 효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생 무상(無常), 바로 어제

세상에 태어난 것 같이 느끼는데 어느새

무덤 입구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중생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시간이 유수보다도 더 빨리 흘러가니

정신을 부모에게 돌려, 자신이야 어떻든 간에 아픈 데를

살펴 드리고, 잡수시고픈 음식을 장만해 드려 몸과

 마음을 평안케 해 드리는 것이 다시 없는 효도의 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효도할 줄 모르는 위인이

 어떻게 나라를 위한 인물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유교에서 보는 인격 측정의 한 기준이었다.

세월이 가기 전에 효도를 하여,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공백이 없도록 타이르는 정 철의

이 시조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큰가시고기

학명  Gasterosteus aculeatus

 

 

유럽 아세아 북아메리카에널리 분포하는 물고기 입니다

몸길이 9 cm 내외로 몸빛은 청흑색에 배는 은백색이고

치어는 흑청색 무늬가 있습니다.

번식기에는 수컷의 배는 선명한 붉은색이 뜁니다.

 몸이 단단한 비늘판으로 덮여 있으며,

등에 강한 가시가 3~4개 있습니다.

연안에 살다가 산란기에 강 하구로 몰려오며,

촌충 같은 기생충의 숙주가 됩니다.

호소·못·늪 등 연안이나 민물에 서식하며

수컷은 끈끈한 분비물에 식물의 줄기를 모아

보금자리를 꾸밉니다.

그리고 보금자리로 암컷을 끌어들여 알을 수정시킨 뒤

깰 때 까지 약 3주 동안 보살핍니다.

주로 다른 물고기의 어린 새끼를 먹습니다.

 

 

 

 

보름 동안 먹지 않고 둥지 지켜

 

지구상에 사는 생물 중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장 강한 생명체가 가시고기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큰가시고기, 가시고기, 잔가시고기 등

모두 3종류의 가시고기가 있는데,

 이 중 부성애가 강한 고기는 ‘큰가시고기’를 말합니다. 

 

 

 

 

큰가시고기는 바다에서 살다가 해마다 이른 봄이면

산란을 위해 하천으로 올라옵니다.

약 일주일간의 민물 적응기간이 지나면

본격적인 산란 준비에 들어갑니다.

먼저 수컷이 새끼를 키울 둥지를 짓는데,

둥지가 와성되면 암컷이 거기다 알을 낳습니다.

하지만 암컷을 알을 낳으면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버립니다.

 

 

 

 

그때부터 수컷의 알 지키기가 시작되는데,

알을 먹기 위해 모여드는 침입자들을 물리칩니다.

또 알들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앞지느러미를

움직여 끊임없이 둥지 안에 새 물을 넣어줍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오직 둥지 안의 알을 지키고 키우는 데만 전념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알이 부화해 새끼들이 태어나도

수컷은 둥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갓 부화한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가면

새끼들을 물어다 다시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아직 나올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화한 지 5일 정도 지나서야 제법 자란 새끼들은

둥지를 떠나 먹이를 찾아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마리의 새끼들까지 다 떠나면

수컷은 그 자리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둥지를 지을 때부터 새끼들이 모두 떠나기까지

약 보름간을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수컷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주둥이가 다 헐고 화려했던 몸 색깔이 볼품없이 변한 채

그토록 애지중지 지키던 둥지 앞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이

죽은 수컷의 주위로 몰려듭니다.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해서가 아니라

아비의 살을 파먹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큰가시고기는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주는 것이죠.

그래서 가시고기를 부성애가 가장 강한 생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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