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항일의상징소안도

이모르 2020. 12. 15. 16:55

 

2019415

 

아침 춘곡님이 카톡방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굿모닝

오늘 처음 들으실 것 같은

노래 하나 올려봅니다

 

노래는 누가 부른건지 모르겠고

가사 내용과 작사 작곡자

소개 글도 올립니다

 

 

 

 

소안도

 

떠난다 떠나간다 나는 가노라

세월의 꽃동무를 남겨두고서

삼추(三秋)에 맺힌 마음 깊고 깊건만

때부름 못 잊어서 나는 가노라

 

만남도 뜻 있으니 믿음도 큰데

마음속에 맺힌 정을 풀기도 전에

이별로 애를 끊은 이 웬일인가

눈물이 앞을 가려 말 못하겠네

 

한 바다 외배 타고 돌아서는 맘

지난 일을 생각하니 꿈결 같도다

뒤로는 웃고 놀던 소안 뜰이요

앞으로는 바라보니 험악한 파도

 

소안에 뭉게뭉게 피는 꽃송아

한 말씀 드리오니 새겨두소서

아무리 악풍 폭우 심할지라도

임 향한 일편단심 변치 마소서

 

 

 

 

이노래를 만든 李時琓

 

이시완은 당시(1920년대) 동아일보

지방부장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소안이라는 곳에서

항일운동 관련 기사가 자기 데스크에

계속 날라들었다.

그것에 감동해 항일운동의 중심지

소안사립학교에 가서 2세교육에 전념하는 것이

자기 할 일이라고 마음먹고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미지의 땅 소안을 찾았다.

그는 소안에 교사로 부임한 이래

신들린 듯한 열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사로서가 아니라 소안의 애국지사들과

의기투합한 것이었다.

그때 소안사람들은 정구공을 처음 보았고,

테니스란 운동을 처음 알았다.

그는 체육에도 뛰어났고 정도 많았었다.

그러나 학교 강제폐쇄의 날이 오자 그는

자작곡(이별가)를 부르며 눈물로

소안부두를 떠나야만 했다.

그 후는 다시 조선일보에서

경제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글을 읽고 소안도를 모르고 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작금의 정치소요 사태 는 참으로

암울한 것이지요 독립투사들을 함부로

테레리스트라 하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인사들이

버젓이 활동하며

거기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온갖 가짜이슈를

만들어 국론을 분열 시키고 있고

거기다 정치권에서 조차 반민특귀에대한

역설을 늘어놓고 있는 이때

조그만 섬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대한

글을 보니 캄캄한 밤중 등불을 만난 것

처럼 희망이 보여 위키백과에서 아래글을

모셔와 옮겨 보았습니다

 

 

 

     

항일 운동의 섬 소안도(위키백과)

 

소안도의 소안 항구에 들어서면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라는

표지석이 제일 먼저 보인다.

이 표지석이 이 섬의 모든 것을 대변하듯

소안도는 독립 유공자 20명을 포함 88명의

항일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항일 운동의 섬이다.

이후 독립 운동의 근거지가 된 계기는

1909년 동학군 이준하 선생등 6명이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에 잠입하여

시설물을 파괴하고 일본인 4명을

살해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1920년대 소안도 2,000여명의

주민중 800명이 일제에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소안도가 항일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배경으로 중화학원(소안학교 전신)이 있었다.

1913년 송내호 등에 의해 설립된 사립 중화학원은

토지 소유권 반환 소송에서 승소 후에

소안 면민들의 성금을 기반으로 사립 소안학교로

발전하였고 수많은 항일 운동가를 길러 냈다.

 

 

 

 

 

 

소안 항일 운동 기념탑

 

1990 6 5일 세워진 항일 운동 기념탑은

비자리의 갯돌을 쌓아올려 만들어졌다.

이 기념탑은 1990년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소안 면민들의

성금으로 만든 탑으로

검은 돌과 하얀 돌을 높이 8m,

 4m로 쌓아 하였다.

검은 돌은 일제의 탄압을, 하얀 돌은

우리 백의 민족의 순결함을,

세 갈래로 솟아 오른 탑 모양은 일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상징하고 있다.

 

 

 

 

소안도/이시완작사

 

떠난다 떠나간다 나는 가노라

세월의 꽃동무를 남겨두고서

삼추(三秋)에 맺힌 마음 깊고 깊건만

때부름 못 잊어서 나는 가노라

 

만남도 뜻 있으니 믿음도 큰데

마음속에 맺힌 정을 풀기도 전에

이별로 애를 끊은 이 웬일인가

눈물이 앞을 가려 말 못하겠네

 

한 바다 외배 타고 돌아서는 맘

지난 일을 생각하니 꿈결 같도다

뒤로는 웃고 놀던 소안 뜰이요

앞으로는 바라보니 험악한 파도

 

소안에 뭉게뭉게 피는 꽃송아

한 말씀 드리오니 새겨두소서

아무리 악풍 폭우 심할지라도

임 향한 일편단심 변치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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