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기

이스탄불의박물관들 터키여행33부

이모르 2021. 3. 30. 16:06

아야 소피아 박물관 톱카프 궁전은 파티샤들 스스로 새궁전 돌마바흐체 로 이전한 반면 아아 소피아 박물관은 오스만에게 정복당한후 이스람화한 비운의 기독교 성지이다.그것은 1200년을 이어오던 비잔틴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소피아 성당 십자가를없애고양옆 이스람의 상징 첨탑을 세웠다.


 

 

 

 

537년 건립된 소피아 성당에서의 진한 감동은 우리나라 신라시대 때 고구려를 통해 들어온 불교의 중흥으로 여러곳에 사찰을 짓고 도로를 내어 정비한 동시대로서 그화려함과 웅장함 이 경의로 웠다. 수십세기동안 지진의 여파에도 대리석엔 금만 조금씩 나있을 뿐이었다. 탄성과 감탄 비잔틴 황제들이 예배를 보던 내부 장소 에서

 

 

 

황제들이 예배보던 2층 로얄석

 

 

 

우리부부가 기념사진을 찍는데 왠지 모르게 중압감을 느끼는 것은교회앞에서죄많은 초라한 자신과 기도와 찬송을 하고있는 보석이 보는 소피아 성당!!!고대인들의 이룩한 어마어마한 예배당안에서 역사의벽속으로 들어와 유스티아누스1세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울러 생각이 만약 거대 이스람사원을 십자군이 정복하였다면 이단으로 생각하여 가치있는 역사적 유물들을 말살하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일까???? 1453년 소피아를 약탈하는 오스만軍 한명을 참하며 정복자 메메드2세 는 큰소리로 꾸짖었다 한다 ,,,

"너희들은 재물과 여인들이면 족하다 이건물은 짐의 것이다 회손하는 자는 참할것이다"

여기 몇군데 이스탄불 근처에 있는 몇몇의 박물관을 소개해 보려한다. 물론 톱카프 박물관 같은곳은 현장에서 철저하게 통제시키며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다 글과 사진들은 대부분 고고학자 알리 클르치카야 의 터키북에서 인용한 것이다...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11대. "콘스탄티누스 '달라가시스' 두카스 콤네누스 팔라이올로구스" 는 계급장 없애고 최후의 순간 까지 전투에 임하다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기도하던 기독교인들은 청동문을 부수고 들어온 이교도 무스림들에게 무참히 유린되고 십자가가 내려지고 미네렛이 세워진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의 벽화와 성화들을 두터운 회가루로 칠해져 무스림 들의 교회당으로 변신 블루모스크의 완성으로 마침내 끝내는 박물관으로 변신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1세(527-565) 황제때인 532-537년 사이 약5년에 걸쳐 건립 되 었다 아야 소피아 성당은 트랄레스 (아이든) 출신의 이시도르스가 건축하였다.내부면적아 100*70m 돔의 지름이 31.5m 돔의높이 55m 내부벽의 상층부 돔 둥근 아치에는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있다 모자이크는 모두9세기 것들이다..건물남똑 문의 모자이크에는 마리아 아기예수 콘스탄티누스1세(306-337) 황제와 유스티아누스1세 황제 가 묘사되어있다

 

 

 

 

 

 

 

 

 

 

본당 중앙으로 열리는 황제의문 인 중앙문 위에는 레옹6세 (886-912)황제 마리아와천가브리엘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황좌표에는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고있는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으며 오른쪽 아치에는 천사가브리엘 남쪽 갤러리 벽에는 마리아 예수 세례자 요한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남쪽 갤러리 동쪽 벽에는 왼쪽에 콘스탄티누스 모노마크후스(1042-1055)황제와 황후조 오른쪽에는 이오이네스 콤네누스(1118-1142) 황제 황후 이레네와 그들의 아들 알렉시우스의 모자이크가있다. 북쪽 갤러리의 내부에는 알렉산두르스(1118-1142)황제 황후 에레네와 그들의 아들 알렉시우스 모자이크가 있다 북쪽 갤러리의 내벽에는 알렉산드르루스(912-913) 황제의모자이크가 있다. 건물 북쪽 벽의 벽감에는 이오아네스. 카리수스토우스.젊은 이그나티 티우스. 데오포르스라는 성인들이 모자이크가 있다.성당은 1453년 이스탄불이 정복당한후 에 아야소피아 사원으로 전환 되었다가1934년 11월24일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1935년 일반에 공개되었다. 오스만 시대에 검물외부에 4개의 탑을 세우고 내부에 미흐랍(사원 내부의 기도하는 방향에 음푹들어간곳) 설교단 황제의 기도실 등을 새로히 설치하였다. 내부 벽에는 알라 모하메드 최초4명의 칼리프(예부베키르.외메르.오스만.알리)와 모아메드의 손자들인 하산과 휴세인 의 이름을 새긴 액자들이 있고 중앙돔에는 코란구절이 적혀있다. 건물남쪽 방향 지지벽 사이에 도서관이 추가로 건립되었다. 박물관 정원에는 술탄 셀렘2세(1566-1574) 무라트3세 (1574-1595) 메흐엣3세(1595-1603)와 왕자들의 무덤 술탄 무스타파1세(1617-1623)와 술탄 이브라함(1640-1648)의 무덤이 있는 세례실 건물 .날짜를 알려주는곳 (무빅카드하네) 스브안멕데비(오스만 시대의사립초등학교) 수도 신학교 무료급식소와 창고 건물이 있다.박물관에서 톱카프 궁전으로 가는 방향에는 현재 작은 사원으로 사용되는 술탄의 별장이 있다.

 

톱카프 궁전 박물관

 

 

 

 

 

 

 

 

 

토카프 궁전의 전경

 

 

 

 

 

가이드의 안내로 가는 길은 그리 넓지 않은 길이다 이스탄불은 마음대로 개발을 할수 없는 古色蒼然한 도시로 허물어진 성벽이며 성채와 함께 현대인들은 공존한다. 톱카프궁전으로 가는 협로는 그러나 14-17세기 때는 전투 마차 와 대병력이 이동하던 중요한 길이었을 것이다

 

 

이스탄불해협 마르마라 해 골든혼을 내려다 보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며 도시를 처음으로 건설 했었던 아크로폴 언덕에 자리한 카프 궁전은 아아 소피아 성당으로부터 사라이 부르노에 이르는 도시와는 분리된 5Km 길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내성 형태로4개의 정원과 특별정원(귤하네 공원)으로 이루어졌다.

 

 

 

 

 

오스만 성벽

 

톱 카프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파티흐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해변가의 비잔틴 성벽과 연결된다 한다.

 

 

 

 

 

 

 

 

비잔틴 성벽

 

 

 

 

매표소 옆 2점의 타일 모자이크화 上 술탄의 사냥모습 下 궁녀들

 

톱카프 궁전은 파티흐 술탄 메흐멧 시기인 1472-1478년 사이에 건립되었다 한다. 이후 술탄시태에 부속건물을 첨가하며 점차 확장되었다.

 

 

 

 

 

톱카프 궁전은 4세기 동안 황제통치의 중심지와 이스람 교 군주 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린다. 술탄 압둘 메지드가 1856년에 해협 연안에 돌마바흐체 궁전을 완성 이전후 톱카프 궁전은 버려지게 되었으나 그궁의 중요성은 상실되지 않다가 1924년4월3일 터키 국부 아타투루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되어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궁전 배치 모형도

 

 

4개의 정원으로 되어있는 톱카프궁전은 아야 소피아 성당옆에 있는 황제의문을 통과하면 제1정원이 나온다 알라이 광장이 라 불리는 이공간의 왼쪽에는 현재 기념박물관으로 공개 되고 있는 성 이리니 교회. 화페 주조소건물과 몇개의 창고 작은 별장이 있다.뜰 오른쪽에는 귤하네 병원. 하스프른과 돌랍오작 이라는 궁전의 수도시설이 있다 제 2의 정원은 두개의 탑이 있는 기념비적인 아브스 셀람(중간문) 문을 통해들어간다. 단반광장이라 불리우는 이곳은 제국을 통치하고 황제권을 이양하던 의식공간이다왼쪽에는 3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쿠베알트라 불리는다반-으휴마윤 건물과 공정의 탑이있다

 

 

 

 

이건물 끝에있는 8개의 돔으로 된 외 창고에는 술탄들이 사용했던 갑옷과 무기들 .오스만 멤룩루. 이란시대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반광장보다 더낮은 베쉬르아 사원과 목욕탕 개인마구간 근위병숙소 창고등이 있고 제2정원 오른쪽에는 같은 높이의 궁전 주방 굴둑20개가 늘어서있고 거기에는 중국 일본 등지에서 들어온 도자기들과 터키산 주방용품들이 전시되고있다.

 

 

 

 

 

 

 

하렘 이마윤이라불리우는 제3정원은 술탄의 개인정원으로 허락없이는 그 누구도 절대 들어올수 없는곳이다. 3정원 입구의 첫번째 건물에서는 고위대신들을 만나고 외국사신들을 접견하며 중요한 협상을 하던 알현실이 있는 술탄의 즉위식 고나직임명 바이람경축 장례식등이 열렸고 1791년에 지은 아흐엣3세 도서관이있다 황제의 옥좌와 오스만 술탄의 상징인 휘장 투구장식 화려한 보석장식단검 큰 다이어몬드 가 가장유명한데 87캐럿 짜리이다

 

 

 

 

스푼메이커스 다이어몬드 이것을 주은어부가

시장에서 스푼3개와 바꾸었다 하여 붙혀진

86캐럿 다이아몬드이고 주위엔 49개의 다이어몬드

가 장식되어있다

 

 

 

 

황금 투구

 

 

 

 

 

 

 

 

 

 

 

 

 

 

 

 

 

 

 

 

 

 

 

맨마지막 무기창고에는 다양한 시계들이 전시되고 뜰오른쪽 코너에는 파티흐시대에 건축된 4개의돔으로 된 하스오다는 술탄의 개인거주지로서 그곳에서 왕세자를 만나고 고위 대신들의 문안을 받았다 19세기 부터는 예언자 모함마드의 스웨터 초대 카리프의 검들이 전시되고 톱카프 궁전에서 사라이부르노를 향하여 있는 제4정원에는 수영장이있는 대리석 테라스 위에 무라트 4세의 레바논원정 기념으로 1636년에 지은 레바논정자 할레를 치르는

 

 

 

또 무라트4세의 바그다드원정기념 으로 1639년에 지은 바그다드 정자 1640년에 술아브라함의 야외 식사용 천막이있다

 

 

 

 

 

 

 

톱카프 발코니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경으로한 도암 부부와 춘성 부부

 

 

 

 

 

이스탄불을 정복후 메흐멧2세는 베야지는 광장에 궁궐을 지었으나 점차 협소해지1472-1478년 톱카프를 건립1534년 카누니 술탄 슐레이만의 어머니가 죽자탐욕스런 하세키 휴헴 술탄은 자녀들과함께 술탄의 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하렘을 만들고 거주하기 시작 1541년 화제 1558년 술탄 휴렘이 여기서 사망 1574년 무라트3세 가 파티사 에 오른후 하램의 건물들을 보수 하렘체제를 새궁전 톱카프로 이전하였는데 해안 성벽에 있던 대포(톱카프)에서 유래된 궁전이름은 1836년 이후 사용 하렘에 1578-1579년에 건축한 건축가는 시난의 작품으로 연못이있는 무라트3세의 방에서 부터 시작하여 집권한 파티샤들이 점차 확장한것이다..

 

 

 

 

하렘 내부 정경 4백에서1천명 까지 수용한 하렘의 내부

 

코란에는 이스람교인은 노예로 둘수 없다는 교리가 있어 대부분 노예시장에서 또는 전리품으로 취득한 16-17살의 젊은 기독교인들을 데려와 개종시켜서죽어서나 나갈수 있는 잔혹한 술탄의 여인들은 주로 주변유럽인들과 유대인들이 었으며 아프리카에서 사온 노예를 거세시켜 경비병으로 썻고 동성애를 방지하기위한 노파 감시원을 두었다 한다..

 

 

 

 

 

 

타일 벽 문양

 

 

위생시설

 

 

 

 

 

동양관

 

 

 

 

내방객들의 식사 풍경 세밀화

 

 

 

 

 

술탄의 식사장면

 

 

 

오스만 軍의 전투장면 묘사도

 

 

 

 

 

 

이스람 재단 박물관

1914년 이스람 재단 박물관 은 터키 최초의 박물관으로 터키와 이스람 예술품들이  전시 되었는데 공화국 수립후 "터키 이스람 문명 박물관"으로 개칭되었으며 1983년에

이브라함 파사궁전으로 이전하였다.

 

 

 

 

 

 

대궁전 모자이크 박물관

 

 

대궁전 모자이크 박물관 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때 건립되었는데 532년 개최된 니케아 공회시 큰회손을 당하여 유스티아누스1세 (527-565)황제시대에 보수 1204년 십자군 원정시 약탈당한 대궁전은 비잔틴 마지막시대에 와잔히 버려졌다가 1453년 오스만 이 이스탄불을 정복후 이지역에는 작은 투루크 마을 이 형성되어 오스만 시대에 술탄 아흐엣사원과 큘리에 건립당시 기초작업과정에서 파낸흙과 페기물을 대궁전 에다 버렸으므로 비잔틴시대의 시설물들은 수미터 지하에 흙더미 속에 묻히게 되었는데 이곳에 건립된 술탄 아흐엣 바자르 의 수 미터지하에서 실시한 발굴에서 대궁전의 바닥에펼처진 모자이크를 발굴하였다 술탄 아흐엣 사원 큘리에 내의 바자르 주변에 영국학자들이 1935-1938년과 1951-1954년 사이에 실시한 발굴작업에서 바닥이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기둥으로 둘러쌓인 대궁전의 뜰을 발굴해 냈다. 바닥에 깔려있는 모자이크 면적은 250평방미터로 6세기 전반부의 이모자이크들은 호랑이 사냥.아칸투스의마스크.풀을 뜯고있는 영양.독수리와 뱀의싸움.거위를 쫒는목동들.낙타를 탄 아이들 염소젖을 짜는 사람들.양을 잡아먹는곰.새끼에게젖을주는 어미말.통나무장작을 실은 노새.베레로폰과괴물키메라.당나귀에 먹이주는 아이.코끼리와호랑이싸움등 자연과 인간의삶과 신화의 내용들을 색깔있는 돌 색유리 구운토기 등을 사용해 묘사했다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때문에 기독교예술에서 나타나는 성화의 상징물과 무늬들은 사용되지 않았다 박물관은 1953년 개관되었으며 모자이크의 복원작업은 터키문화재청과 오스트리아 학자협회 공동으로 1983-1997년 사이에 실시하였다.

 

 

 

 

고고학 박물관

 

귤하네 공원입구 오른쪽에서 톱카프 궁전으로 올라가는 오스만 함디 베이 오르막에 위치한 고고학 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고대동방예술박물관.타일박물관 으로 3개의 박물관으로 이루어졌다. 백만점 이상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큰 박물관중에 하나다. 이곳의 대표적 수집품으로 발칸반도 .아나토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랍 .이집트.이락크. 아프칸이스탄. 등 광대한 지역에서 수집한 다양한 문명의 진귀하고도 문화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박물관본관(구관)과 부속건물 (신관) 두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본관은 오스만 함디 베이의 명으로 19세기 후반의 건축가 알랙산드레 밸러리가 건립한 제국 박물관으로 1891년과 1902.년.1908년 3단게에 걸처 완공한 것이다..사이다 석관 분묘가 있는구역은 "석관묘 박물관 이란 명칭으로 1891년7월13일 개관되었다.

 

터키 최초의 박물관인 이건물은 2층구조로 건물외부면은 울고있는 여인의석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이스탄불내의 네오 클레식 양식 건축물들중 가장 뛰어난 작품중 하나이다. 본관아래층에는 사이다왕의 무덤에서 발견한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 울고있는여인의석관. 사트랍석관.리키아석관.사브니트석관과 그밖에 고대도시 지역에서 가져온 시다마라 석관 에로스라르석관과 더불어 여러 신전에 있던 건축물과 석상 .조각품들 비석들 제단석 모자이크등을 고대로부터 비잔틴 말기까지 시대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것들중 알렉산더 대왕의머리 마르시아스 티케여신. 님프해. 에프해보스 석상과 마루크스 아울렐리우스 황제와황후 파우스티나의 상반신 등은 중요한 전시품이다.

 

 

 

 

 

 

 

 

 

 

고대 동방 예술 박물관

고대 동방 예술 박물관

 

오스만 함디 베이에 의해 1883년 사나이 네피세 엑테비(좋은예술 아카데미)로 건립된

2층따리 건물이다. 1917-1919년과 1932-1935년 사이 박물관 으로 전환되었다 1963년

폐쇄후 내부 개조를 통해 현대적 면모를 갖추고 1974년 다시 개관 되었다.

위층에는 이슬람 이전의 아랍유물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아나톨리아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히타아트와 이집트 사이에 B.C 1269년에 체결한 역사상 최초의 평화와

우정의 조약인 카데쉬 평화조약의 서판이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

7만 5천점 이상의 쐐기 문자 서판들도 가득찬 품부한 "서판문서고"이다.  아래층은 고대 유물들 보관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도자기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즈닉 산 동잔들 청백도자기 접시들은 이곳의 가장 귀중한 유물들이다. 또한 큐타하와 치낙칼레 도자기들도중요한 수집품들이며 소장품들은 2000점 넘는다.

 

 

 

 

 

 

카리에 박물관(코라 수도원교회)

이스탄불 성벽의 에디르네 성문구역에 자리한 카리예 는 고대 그리스 어의 “도시밖” 또는 시골 이란 의미의 코라 라는 단어에서 유래 유스티아누스 1세(527-565)황제시대인 536년 수도원과 카리예교회를 함께 건립하였다.

 

페티예 박물관(파마카리스토 수도원교회) 파티흐군의 차르삼바 지역에 마리아의 이름으로 지어진 파마카리스토스 수도원교회는 13세기후반 (1294년)비잔틴 궁전의 탁월한 인재인 미하일 글라바스의 작품이다 1315년 교회남동쪽에 마리아 두게나가 남편 미하일 글라바스를 기리기위해 교회와연결하여 파렉클렉시온 (무덤예배당)을 세웠다.교회에서 중요한 부분인 파렉클렉시온은 4개의 기둥으로된 시자가형태로 설치되었다. 창들이 있는 두 개의돔 나르덱스 본당은 12개의 창이있는 돔으로 덮혀있다. 중앙돔은 12부분으로 분활되어있으며 가운데 부분에 예수.다른 부분에는 구약성서의내용이 모자이크로 묘사되어있다. 황좌표부분에는 예수와마리아.이오안네스가있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묘사되어있다 또한 아치와둘레에는 성인들을 묘사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있다  이스탄불 정복후 여인들의 수도원으로 사용된 이곳은 1455년부터150년 동안 희랍 대주교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16세기말(1590년)아흐멧 파샤가 이스람 사원으로 전환하여 아제르바이젠과 그르지아를 정복한 기념으로 “페티예”사원이라 명명하였다. 1640년 화재로 1845년 보수 1936-1938년 대대적인 보수 1960년 예배 무덤에배당과함께 내부의 모든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미국 비잔틴학회가 복원하여 현재 “페티예”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