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기

예레바탄사라이바실리카 저수지 터키여행34부

이모르 2021. 3. 30. 16:17

 

이스탄불의 옛 지도

인류가 생존하는데 필수요건은 물이다 더욱이 로마인들은 목욕하는 습관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났다 한다. 에페소 에 가보면 목욕탕과 토관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70년대 우리들이 쓰고 있던 토관과 다를것이 없었다

 

 

 

고대 에페소의 바리우스 목욕탕앞에 전시된 수도관 토관

 

고대 도시 히에라포리스에 있는 수로

 

 

트로이의 고대 토관들

 

고대인 들은 그 토관의 지름으로 물값을 징수 하였다 하는데 에페소 뿐 아니라 트로이등 자주 목격 되었던 것이다 여기 소개되는 예레바탄 사라이 바실리카 저수지는 강으로부터 몇십미터 떨어진 도시로 옮겨오는 발렌스(보즈도안) 수로를 보고 탄복하여 쓰게

된다.....

 

 

 

발렌스(보즈도안)수로

터키 영토는 북위36도 -42도 동경26도-45도로 아시아와 유럽 대륙 사이에

자리한다 터키의 아시아대륙 영토는 아나톨리아.(그리스어로“동쪽의나라”

“태양의동쪽 지역”이라는 의미인데 고대에는 소아시아라 불리었다.

이스탄불해협.치낙칼레 해협.마르마라海 는 터키영토를 둘로나눈다

여기에 영토의3면을 흑해 에게해 지중해로 에워싸고 있는 면적776.723평방미터로 국민은 터키인.쿠르트족.아르메니인.아랍인.희랍인.보스니아인.조지아인.서어카시아인.

알바니아인.아제르바이젠인.체첸인 등 모자이크 처럼 구성되어 있다.

아나톨리아는 12.500년 전부터 일류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며 수없는 인적교류가

이어져 왔던 무대로서 콘스탄티노풀로 시작하면 1922년 오스만 제국이 멸한뒤 1925년 이스탄불로 개칭된 이도시에  현 상존인구는 1,700 만명이다.

 

 

 

 

이스탄불의 번화가의 도시민들 상존인구는 1,700 만명에 달한다 한다

 

톱카프 궁전 앞에서 현지인과 기념사진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현재 이스탄불을 로마제국 東方領의 수도로 정하고 콘스탄티노풀(konstantinopolise)라 명명하였다. 4세기에는 인구 20만이 넘는 대도시로 발전 로마를 모방해서 7개의 언덕에 주요건축물을 구축 400개가 넘는 교회가 건설되었는데 그중 서기324년에 건립된 하기아소피아 대성당은 동방 그리스도의 중심이되었다 이렇듯 20만이 넘는 그 당시 인구는 다량의 담수가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19km 떨어진 리쿠스(Lycus) 강에서 取水하여 수로를 만들어 콘스탄티노풀로 물이 흐르게 하였다.

 

 

 

유스티아누스 1세(517-5650황제 시대인 527년에 아야소피아성당과 황제 궁전에 필요로하는 물을 저장하기위해 만든물저장저수지 유스티아누스1세(517-565)황제 시대인 527년에 아야 소피아 성당과 황제의 궁전에서 필요로 하는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물 저장고를 만들고 저수지 이름은 그이전 이곳의 문화 중심지엿던 바실리카에서 유래 되었으며 유스티 아누스 저수지로도 알려져 있다.

 

 

톱카프 궁전 정문앞에 있는 술탄시대에 만들어진 우물

아나톨리아에 최초로 이주해온 터키인들은 지하에 있는 기둥숲을 연상시키는

이 저수지를 보고 이곳을 땅에 가라앉은 궁전과 유사하다여 예례바탄 사라이(지하궁전)라 불렀다  발렌스(보즈도안)수로를 통하여 옮겨온 물을 저장하였던 바실리카

저수지는 근대에 까지 이스탄불에서 그기능을 하였던 유일한 저수지로서

톱카프 궁전의 정원에까지 물을 공급하였다

 

톱카프 궁전 정원의 일부분

 

 

 

 

 

 

 

 

 

 

 

 

 

 

직사각형으로 면적은 65*138m 이고 높이는 8m.336(12*28)개의 기둥이

천장을 바치고있다. 제일 안쪽에 있는 짧은 두 개의 기둥에 메튜사

머리가 있다 1985-1987년 사이 이스탄불시에서 재 정비와 내부청소를

한후 관람로를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