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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작곡의동시 오빠생각외

이모르 2021. 6. 9. 13:37

 

2021525일 화요일

곡산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심스님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작곡가 박태준인데요 SNS에 올라온글 공유 합니다

 

동무생각(思友)  청라언덕 위의 첫사랑/서 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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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를 청(), 담쟁이 라() 자를 써서 '푸른 담쟁이 덩굴'이란 뜻을 가진 '청라언덕' 

당시 박태준이 다니던 대구 계성학교의 아담스관과 맥퍼슨관그리고 언덕에 위치한 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들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휘감겨 있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대구 동산동의 청라언덕은 대구 근대문화의 중심지다코로나 바이러스 환자 치료로 유명한 대구의 계명대 동산 병원이 바로 이곳 동산의료원이다

 

청라언덕/알퐁소 김대식

박태준은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선구자로서 1920년 동요 기럭기럭 기럭이...’ 라는 기러기’, 1925‘24세의 나이에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오빠생각’, 새나라의 어린이 등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를 작곡했고 1922년 그가 작곡한 우리나라 첫 가곡인 동무생각(思友)’의 노랫말이 바로 이 언덕위의 돌비에 새겨져 있다

 

사진출처/藝河 옆지기 淸雲

마산 창신학교 설립자의 아들이자, 창신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노산 이은상은 1년전 이 학교로 부임한 태준이 지은 동요를 좋아했다태준은 은상과 함께 노비산 언덕에서 바라보는 월포의 일몰을 좋아했고노마산에서 구마산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은상은 푸른 담쟁이 가득한 청라언덕과 좁고 긴 90계단이 아름다운 태준의 고향 이야기를 좋아했다태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은상은 꿈결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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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고운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날도 태준은 은상과 함께 노비산 언덕에 앉아 있었다암울한 조국의 현실이 둘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하였다침울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문득 은상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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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 선생님, 선생님의 첫사랑은 어떤 분이셨나요?”

 

라고 물었다은상의 뜬금없는 질문에 태준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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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뭐, 한번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는걸요.“ 첫사랑이 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영영 가슴속에 박제되는 사랑이고요.” 

“제가 다니던 계성학교 가까이에 있는 신명여고의 여학생이었어요. 함께 교회에 다녔는데, 한번은 그 여학생이 자두를 한 바구니 가져와 교회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전 그 자두가 저한테까지 올까 하며 가슴을 졸이며 있었지요. 

그러다가 결국 화장실로 달아나 버렸어요.

 

혹시 자두를 못 받게 된다면 내가 자리에 없었으니 주지 못했을 거라 위안 하려고요. 

그 후 돌아오니 오르간 위에 자두 두 알이 놓여 있었어요. 깨끗한 손수건이 자두 위에 덮여 있었지요. 그 자두를 한참 책상 위에 두고 날마다 바라보았어요. 더는 둘 수 없을 만큼 썩고 말라버렸을 땐 꼭지를 따서 그 꼭지를 습자지에 싸서 보관했지요.” 

 

"교회로 가려면 청라언덕을 지나가야 했어요. 여학생은 저녁 예배를 드리러 그 길을 지나곤 했는데 전 오르간 연습을 하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언덕으로 가 그 여학생이 지나는 걸 바라보았어요. 손수건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는 다가올 그 시간을 아껴두고 싶었거든요. 어느 날 굳은 결심을 하고 그녀를 기다렸어요. 

 '자두 고마웠어요' 라는 말을 수백 번도 더 연습했지요. 라일락 이파리가 잔뜩 두꺼워진 칠월 하순이었는데, 그즈음 그런 말이 유행하고 있었어요. 

 ‘사랑의 맛을 알려면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라’는. 하지만 라일락 이파리가 어떤 맛인지는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문득 저는 그 맛이 궁금해졌어요. 사랑의 맛이 궁금해졌던 거지요. 손을 뻗어 연한 잎 하나를 떼서 입안에 넣었는데. 아, 그 맛이란! 그건 먹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맛이었어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은 맛이었는데 뱉어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그 기다림이 허사가 되고 말 것 같았거든요. 그때였어요. 

멀리 그녀의 모습이 보였어요. 

기다림은 그렇게 길었는데 그녀의 걸음은 어찌나 빨랐던지 내가 이파리를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그녀는 내 코앞에 마주 있었지요. 아직도 입안에 가득한 그 맛 때문에 혀가 얼얼하고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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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바보 같게도 '라일락 고마웠어요' 라고 말하고 말았어요. 어휴, 그렇게 골백번 연습한 말을 두고 라일락이 고맙다니요.”

 

♡♡♡

순진한 아이처럼 귓불이 붉어진 태준을 바라보며 은상은 배를 잡고 웃었다

“아이고, 도대체 그 이파리 맛이어땠게요?” 

“그건 이 선생님이 직접 맛보셔야 해요. 사랑의 맛이 그런 것이라는 걸

절감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태준은 얼굴을 활짝 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어떻게 한 줄 아세요? 절 보며 웃었어요. 

 제게 눈을 맞추고 소리 없이 빙그레 웃었답니다.“ 

그 후 그녀는 말 한마디 없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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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상이 

갑자기 생각난 듯 수첩을 꺼내 무언가 끼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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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님, 선생님 곡에다가 그 여학생의 이야기를 담으세요, 그러면 그 소녀와의 사랑을 노래 속에서나마 이룰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가사를 써드릴 테니 곡을 붙여보시겠어요?”

잠시 후 은상은 

태준의 고향 추억과 눈앞에 펼쳐진 월포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시를 건네주었다

수첩을 받아든 태준의 눈동자가 따스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촉촉이 젖어들었다

“정말 아름다 운 노랫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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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어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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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생각

 

이은상 시, 박태준 곡 - 테너 임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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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은 며칠 전에 작곡한 곡을 떠올렸다

그 음률 속에서 푸르던 청라언덕과언덕의 붉은 벽돌담과 붉은 담을 휘감은 푸른 담쟁이와그 길을 장난치며 오르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일본유학 중 폐결핵에 걸려 돌아와 24살의 나이로 그 아름답던 생을 마감했던 형 이었다그리고 창포물을 들인 듯 윤기 나던 소녀의 검은 눈썹과그 눈썹 아래 싱그럽던 소녀의 미소가 태준의 뺨을 조용히 만지고 지나갔다멀리 파도 속으로 백합 같은 소녀의 희디흰 얼굴과 저녁 조수처럼 떠난 흰 새 같은 형의 얼굴이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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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이 쓴 이 사연을 읽고 나는 그날 내내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선율 속에 담겨진 그의 풍부한 서정성은 당시 우리 민족의 가슴에 맺힌 한을 위로해 주었고 그리움과 애잔함을 달래 주었다 한다.이 땅의 연인들이여사랑의 맛을 알려면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세오박태준이 말 하길, “아 그 맛이란 정말 죽을 것 같은 맛이었어요!” 이 이야기는 

가곡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고 싶다라는 인터넷 가곡이야기에서 읽은 글이다'최창일' 시인 이 2009-12-08일자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인용한 글이다박태준그는 민족정서를 표현해 낸 우리나라 현대음악 개척의 선구자이다박태준 선생님의 첫사랑은 '동무생각'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다나는 왜 그리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마음이 쓰이고 가슴이 아픈 걸까

 사랑여느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이겠지만 나는 아니다아프고도 슬프다” 

박애란 동년기자가 말했다.벅태준은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숭실학교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합창지휘를 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연세대 종교음악과를 설립하고 음대 초대 학장을 지내셨다.

 

평보

 

형님이 올리신 작곡가 박태준(朴泰俊)첫사랑에 대한 글 감명깊게읽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친숙한 동무생각 오빠생각등은 너무나 유명한 곡들 입니다 형님 글 보고 인터넷 조회 하니 윤복진 이라는 이름이 함께 뜨네요 윤복진은 박태준과 대구가고향 기럭이 찔레꽃 물새발자욱 등 그의 작시50여편을 박태준이 작곡 하였으나 해방 건국후 좌익으로 몰려 고생하다 50전쟁통에 자진 월북 그의작품들은 금지곡이 되었고 88년 해금 되었으나 그의 많은 작품들이 글짜 몇개 바꿔 양식없는 인사들이자신의 글인양 발표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답니다

 

재미 있는거는 박태준 작곡 오빠생각은 작사가 는 최순애 아동문학가 이원수의 아내

입니다 소녀때 8살 위의 오빠가 서울로 떠나는 이별을 아쉬워 지은 시 였는데 1925년 박태준 작곡으로 발표 합니다 그러나 1920년 발표된 일본 곡을 표절 했다는 시비가 있었다

합니다

 

박태준 작곡 오빠생각 1925년 작

 

새를 주제로한 일본곡 1920년 작

 

 

 

우리가 가을밤으로 알고 있는 이동요는 원래 시인 윤복진의 동시 기러기에 박태준 곡을 붙인 것으로 1920년에 작곡된 우리 동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곡입니다 우리나라 동요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윤극영의 반달 1926년 보다 6년이나 앞선 곡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러나 해방이후 동란때 윤복진이 월북 했다는 이유로 어느날 이 노래는 음악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이태선이 새로 가사를 쓴 가을밤과 이원수 시 이연실 개사의 찔레꽃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기러기는 당시의 많은 노래들이 그렇듯이 가곡 가요 동요 등으로 특별히 구별하지 않았으나 작사가가 주로 동시 작가로 활동 하였으니 동요 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1907년 대구에서 태어난 유복진시인은 한국 전쟁중 자진월북 해 1991년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인하여 한국에서는 그의 노랫말로 된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되었기에 기러기는 이태선 작사의 가을밤과 이연실 개사의 찔레꽃등으로 비뀌어 블렸으며 이 외 잊혀진 동요로 윤복진과 홍난파 곡인하모니카는 운석중의 작사로 바뀌어 이어져 왔습니다 이에 북한 메체에서 항의 성 성명도 있었다 합니다   출처 김선태 블러그

 

노산 이은상 
박태준 작곡가
윤복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