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눈시모음 눈이내리는소리(작별)

이모르 2020. 12. 12. 15:02

 

 

 

 

 

단풍/이외수

                                  

저 년이 아무리 예쁘게 단장하고

치맛자락 살랑거리며

화냥기를 드러내 보여도

절대로 거들떠 보지 말아라.


저 년은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저 년이 떠난 뒤에는 이내 겨울이

닥칠 것이고 날이면 날마다

 엄동설한, 북풍한설,

너만 외로움에 절어서

 술독에 빠진 몰골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불과 얼마전 단풍사진과 함께

춘곡이 올렸던 이외수의 단풍 詩 입니다

 

 

 

오 !!!!!!!!! 그런데 당진에 첫눈이 왔다고

엘랑비탈님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미약 했지만 서울 내가 사는곳에도

첫눈이 왔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이정화의

시를 보냈습니다

 

 

 

눈오는 날엔/이정하

 

 

눈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첫 눈이 온 세상 아침을

고향집 에서 이런 시를

지었었지요

 

 

 

 

 

 

 

눈내리는 소리/평보

 

고목 까치소리 요란하다

싸리울 참새 지져김 부산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밤새 함박눈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

 

봄날 낙화의 꽃비처럼

비틀대며 포개진다.

 

장독대 위로

싸리울 위로

소리없이 쌓여간다

 

하얀세상

흰둥이 검둥이

삽살개 뛰놀며

어지럽힌다

 

회 안에서 암 닭이

꼬꼬 거린다

숫 닭은 목청 돋구어

길게 꼬끼오

눈 풍경을 즐기고 있다

 

쌀 한주먹 뿌려주신

할머니

참새들 몰려와 잔치한다

 

뽀드득 뽀드득

이웃집 분이가

마실 오더니

덮어 놓은 이불속으로

숨어버렸다

 

 

 



 

눈/주요한

 

 인경이 운다. 장안 새벽에 인경이 운다.
안개에 쌔운 아픔은 저노픈 흰구름 우에서

남모르게 발가오지마는 차듸찬 버슨몸을

밤의 아페 내여던지는 거리거리는 하편의 꿈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밤을 새워 반짝이는 빨간등불 아레

노는계집의 푸른피를 빠는 환락의

더운입김도 식어저갈, 쟝안의 거리를 동서로

흘너가는 장사나가는 노래의 가---는

여운이 바람치는 긴다리 밑으로 스러져갈 때,

 

기름다른 등불이 힘업고 깊은 한숨소리로

과거의 탄식을 거퍼하면서 껌벅거릴 때

꿈속에서 꿈속으로 웅웅하는

인경소리가 울니어간다.

새벽고하는 인경이 울니어간다.

눈이 녹는다.

 

동대문 노픈집웅우에 눈이 녹는다.

청기왓쟝 냄새, 날아가는 단청냄새,

멀리 갓가이 니러나는 닭소래에

 밤마다 뚝떡이는 둑갑이떼들도

아름으리 기동사이로 스러젓건마는,

 

문아래로 기여드는 바람소리는

아직도 처량한 반향을 어둑신한

천정으로 보낼때마다

아아 무슨서름으로 가슴맥힌바램소래를,

 드러라 저긔 헐어저가는 돌담경에서,

해마다 버더나는 머루닙아레서

바람이 슬프게 부는 피리소리를.

흐터지는 눈에 석겨서 슬픈 그 소리가

나의 마음속에 부어내린다.

아아 눈이 녹느다.

샛파란잇기우에 떨어지는 눈이 녹는다.

 

까치가운다. 장안 새벽에 까치가 운다.

삼각산 나무수풀에 퍼붓는 눈에 길을 일코서,

어제저녁 지는해 빨간구름에 표해 두엇던

길을 일코서, 눈오는 장안 새벽을 까치가

울며간다. 까치가 운다.

 

아, 인경이운다. 은은히 니러나는

인경소리에 눈이 쌔운다.

장안에 넓고 조븐길에 메운다.

님을 못뵈고 죽은 색새의 서름에

겨운 눈물이 눈이 되어 나린다

먼전해 봄바람에 지고남은

 

희복사꽃이 죄 품은 선녀의 뜨거운

가슴에서 흘너나린다.

안개에 쌔인 아츰은 저 노픈 구름

우에서 남모르게 밝아 오지마는,

바람조차 퍼붓는 눈은 장안거리를

가로막고 외로 메운다.

그침 없이 끝업시 쌔운다, 쌔운다, 쌔운다.....

 

 

 

 

 

첫눈오는날 만나자/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온이 뚝 떨어져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걸음을 치다가도

 첫눈을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첫눈은 내가 기다리기 때문에 온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 때문에 온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얼마나 첫눈을

기다리며 살아왔던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며 살아왔던가.

이제는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고

더러는 연락조차 두절돼 만날 수가 없지만

겨울이 오면 그날의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다시 떠오른다.

 

 

 

 

겨울숲에서/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가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눈위에쓴시/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눈이 녹아 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눈꽃 아가/이 해 인

1
차갑고도 따스하게
송이송이 시가 되어 내리는 눈
눈나라의 흰 평화는 눈이 부셔라

털어내면 그뿐
다신 달라붙지 않는
깨끗한 자유로움

가볍게 쌓여서
조용히 이루어내는
무게와 깊이

하얀 고집을 꺾고
끝내는 녹아버릴 줄도 아는
온유함이여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겠네
그대가 하얀 눈사람으로
나를 기다리는 눈나라에서

하얗게 피어난 줄밖에 모르는
눈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해야겠네

2
평생을 오들오들
떨기만 해서 가여웠던
해묵은 그리움도
포근히 눈밭에 눕혀놓고
하늘을 보고 싶네

어느 날 내가
지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날도
눈이 내리면 좋으리

하얀 눈 속에 길게 누워
오래도록 사랑했던
신과 이웃을 위해
이기심의 짠맛은 다 빠진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

녹지 않는 꿈들일랑 얼음으로 남기고
누워서도 잠 못 드는
하얀 침묵으로 깨어 있을까

3
첫눈 위에
첫 그리움으로
내가 써보는 네 이름

맑고 순한 눈빛의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기침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
네 이름은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꽃 속에

나 혼자 감당 못할
사랑의 말들은
내 가슴속으로 녹아 흐르고
나는 그대로
하얀 눈물이 되려는데

누구에게도 말 못할
한 방울의 피와 같은 아픔도
눈밭에 다 쏟아놓고 가라

부리 고운 저 분홍가슴의 새는
자꾸 나를 재촉하고......
            

 

 

 

 

 

 

겨울 빈집 / 최 하 림
 

며칠째 눈은 그치지 않고 내려 들을 가리고
함석집에서는 멀고 먼 옛날의 소리들이 울린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리는 눈은
처마에서 담장에서 부엌에서
간헐적으로 기명 울리는 소리를 낸다
귀 기울이고 있으면 연쇄파동을

일으키며 계속 일어난다
나는 등피를 닦아 마루에

걸고 유리창을 내다본다
아직도 눈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다
천태산 아래로 검은 새들이 기어들고
하반신을 어둠에 가린 사람이 샛길로 접어들고
시간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언덕과 둑길을 지나
파동을 일으키며 간다

이제 함석집은 보이지 않는다
눈 위로 함석집의 파동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주목하지 못한다
파동은 모습을 드러내는 일 없이

아침에서 저녁까지
빈 하늘을 회오리처럼 울린다 
    

 

 

 

 

 

 

폭설(暴雪)/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첫눈이 오면 만나고 싶은 사람 있지요?

발코니가 있는 찻집에서 

Auld Lang Syne 을 들으며

함박눈 내리는 창밖을 함께 본다면 !!!!

 

"adieu" 한해를 보내며 영원히

만날수 없는 가는해

석별의 정을 아쉬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