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10년2월21일
지리적위치:경남 함양군 서상면, 거창군 북상면, 전북 장수군 계북면
영각사:영각사는 신라 헌강왕 2년(876) 심광대사(審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세조 31년(1449) 원경(圓境)대사가 중건하였으며 중종 18년(1523)
성묵(性默)대사가 중창한 절로 6.25때 설파(雪坡)대사가 감수하여 만든
화엄경판까지 불타 버려 1959년 다시 지었다
발원지:남덕유산은 3대강의 발원샘을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구들과 싸웠던 덕유산 의병들이 넘나들었던 육십령은
금강(錦江)의발원샘이며 정상 남쪽 기슭 참샘은 거룩한 논개의 충정을 담고 있는
진주 남강(南江)의 첫물길이 되며 북쪽 바른 골과 삿갓골샘은 낙동강(洛東江)의
지류 황강(黃江)의 첫물길이다.(참조한국의산하)
남덕유산:1507m
참가인원;약50명
코스:영각사통제소-하봉-중봉-상봉(남덕유산)-교육원
소풍가는 어린이처럼 잠을 자지 못하여 몸이 무거웠다.
버스에서 잠을 청할 양이었으나 옆 자리에 초면의 아름다운 숙녀가
있어 영화이야기를 하다가 휴식을 취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휴게소 에서 아침배식이 있었습니다.
선지 해장국에 홍어회 몇 잔의 쇠주 가 돌아가고 식탁에 같이한
은정 바늘 부부와 멋진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도중 앞에선 버스옆 동승자에게 말을 거는 순간
은정님이 일갈하는데 “날신한 숙녀에게만 신경쓰는 치사한 세상”
그 위트의 순발력에 감탄하려는 순간 요즘 코메디의 일부분이라나??
영각사 입구에서 11시경 등산 시작입니다.
40여분 경과 후미 구룹에 있던 000님이 탈진하여 토를하고있었습니다,
장비를 받아 앞에 지고 산행을 포기 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강행하겠다하여
걱정이 앞섰습니다.
전진하다가 앞뒤로 배낭을 멘 중압감에서 힘들게 행군하고
있었는데 하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강태공님이 배낭을 받아가서 날것같았지만
176 철계단을 오르는데 넓적다리에 쥐가나서 힘들었습니다.
철계단을 오르며
옛터의 회장님이 힘내라며 양주한잔씩 돌리시고 대장님은 후미에서 계속
독려와 힘을 더해주고 있었고 모양성님은 전후 좌후 종행무진 하며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었기에 존경을 표했지요..
원경의 향적 삿갓봉
하봉밑 정체된 철 계단에서 보는 삿갓봉 향적봉의 설경이 가슴 시원하게
하였습니다 위를 보니 상고의 모습도 있고
하봉 철계단에서보는 얼름꽃
하봉을 넘어 중봉을 바라보며
중봉으로 오르는 하봉능선의 군중들
중봉에서 보는 상봉(남덕유산)
오르고 내리는 군중속에서 힘들게 중봉을 넘어 남덕유 정상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는데 은정의 족발
과 바늘의 매생이 부침개는 거의 예술이었습니다
정상에선 평보
함께한 산우들
교육원 쪽으로 하산하는데 북쪽이라 눈이 쌓인 그대로여서 숙녀들이
힙 썰매 를 타며 즐겁게 하산하는데
힙썰매에 심취한 나공주와 꽃사슴
옛터의 고정 게스트들
눈이 약간녹은 데는 위험하여
아이젠도 소용 없다는게 발목까지 오는 녹은눈이 미끌어지고 있기
때문였습니다.
상고대
동심의 숙녀들
내려오면서 몇몇 가지에 핀 상고대의 모습으로 환성을 지르며
눈밭에 있는 아취형 고사목에 들어가 사진찍기를 자청하는 숙녀들에게
아름다운세상에 온것을 축하하였습니다..
사슴은 이렇게 말했지요“오를때 고통도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게 되면
한순간 피로가 없어지지요 그리고 망설이다 산에오기를 잘했다고 생각
하지요“
죽엽군락지에서
우측으로 내려서 계곡 얼음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물
숲속의 짐승들의 쉽터가 분명합니다
힘들게 6시간 30분의 산행은 즐거움과 같이 지나갔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덕유산 종주를 할때의 패기와 자존은 사라지고
점점 힘들어지는 건 나이 탓일까
하산후 냇가에서 떡국과 육회와 회 맥주 소주 막걸 리가
무제한 공급되고
옛터의 사람들은 저마다 솔선하여 봉사하고
덜어주고 특히 대장은 후미를 철저히 챙기며
낙오를 방지하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