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백마산)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초월읍에 걸쳐 있습니다.
마름산→백마산(434m) →용마봉(503m) →
발리봉(458m) →노고봉(578m) →정광산(563m) →
474.7봉(474m)→마구산(595m) →태화산(644m) 으로
16km의 능선이 이어져 있습니다.
등산로가 완만하여 산책길 같은 숲길입니다.
참나무 숲이 빽백하고 다양한
야생화초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두꺼비: 학명(Bufo gargarizans)
개구리목 두꺼비과
에 속하는양서류 입니다.
한반도, 일본, 몽골 등에 서식합니다.
다른 개구리와 달리 잘 뛰지 못하며
보통 엉금엉금 기어다닙니다.
피부에 부포톡신이라는 독이 있는
물질을 내뿜는데 이 때문에 다른
양서류에 비해 천적이 적으며
특히 뱀 종류한테
이 독성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천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성체의 경우,
유혈목 능구렁이 등의 두꺼비 독에 면역이 있는 뱀이
특히 무서운 천적이며 몸집이 큰 쥐 같은 설치류, 때까치,
들 고양이, 들개등도 천적입니다.
어린 올챙이나 올챙이에서 갓 자란 새끼의 경우에는
물방개 물장군 사마귀 등도 천적이 될 수 있습니다.
두꺼비의 알은 둥글둥글한 알을 낳는
다른 개구리 종류와 달리
긴 끈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부터 집안으로 들어오는 두꺼비는
복이 들어오는 징조라 하여 잡으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들을 낳게되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하는데
그만큼 크게될 아이를 에둘러 표현한것입니다.
2019년 6월30일 도선산우회 관촌이 촬영한
백마산 노랑망태버섯과 두꺼비
두꺼비 관련기사
충북 청주시 산남 두꺼비 생태마을의 자랑인 두꺼비 생태공원.
이 마을 생태를 보려고 해마다 탐방객만 3만여명이 찾는다.(왼쪽)
산남 두꺼비 생태마을 한 아파트 벽에 그린 두꺼비 그림.
이 마을은 온통 두꺼비 천지다.(오른쪽 위) 두꺼비 마을
주민들이 마을 논에서 수확한 벼를 털고 있다.(오른쪽 가운데)
두꺼비 마을 주민들의 소통 매체인 <산남 두꺼비마을신문>
.(오른쪽 아래) 두꺼비 친구들 제공
조선의그림속의 두꺼비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숙종 33)~1769(영조 45),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청송. 자는 이숙(頣叔),
호는 현재(玄齋)·묵선(墨禪). 아버지는 문인화가
정주(廷胄)이다. 증조부 지원(之源)이
영의정을 지낸 이름난 명가
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누더기 입었다고 무시 마!
이래 봬도 신선이야!"
선의 거친 느낌이 화난 주인공과 닮았네
처음에 선생님은 이 사람이 거지인 줄 알았어.
다 찢어진 반바지에 누더기 옷을 걸쳤잖아.
게다가 맨발에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졌어.
허리춤에 동냥 바가지 하나 차면 딱 맞겠는데.
손에 든 건 또 뭘까. 동냥 음식 찍어 먹는 포크라고? 설마!
그 아래 있는 작은 동물은 또 뭐지? 개구리 같기도 한데….
볼수록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야.
현재 심사정의 하마선인도
●두꺼비 신선
이 그림은 어쩐지 좀 거칠지 않니? 잘 다듬지 않은
느낌이 들어. 옷 좀 봐. 마치 장난치듯
아무렇게나 먹칠해 놓았잖아.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는데. 안 그래?
그 거친 느낌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야.
주인공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니까. 화가 많이 난 것 같지?
아니, 주인공보다는 화가가 더 화난 것 같아.
아무 말이나 막 내뱉듯, 붓 가는 대로 막 칠했어.
혹시 분을 삭이려고 이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닐까?
억지로 참기보다는 차라리 화를 내는 편이
스트레스 풀기에도 좋잖아. 이제 이 사람
정체를 밝혀야지. 정말 거지는 아닐 테니.
이 그림은 ‘하마선인도(蝦磨仙人圖)’야. ‘웬 하마냐고?
두꺼비를 한자로 ‘하마(蝦磨)’라고 해. 그럼 발이 셋 달린
동물은 두꺼비겠네. 그럼 ‘선인(仙人)’은 무슨 뜻일까?
바로 ‘신선’이라는 뜻이야. 그렇다면
이 작품 제목은 ‘두꺼비 신선’이 되는 거지.
그림 속 남자의 이름은 ‘유해’야.
유해는 10세기경 중국에 살았던 신선인데,
이 두꺼비 덕분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대.
두꺼비는 유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데려다 주었거든.
그런데 녀석이 가끔 말썽을 피웠나 봐.
자꾸만 옛날에 살던 우물가로 도망치곤 했다니까.
그때마다 유해는 다섯 개의 갈고리(또는 엽전)가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건져 올렸어. 그
림에서 손에 든 게 바로 그거야.
유해는 당연히 화가 났겠지. 두꺼비한테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니까. 지금 막 큰 소리로 꾸짖고 있어.
“너 자꾸 이럴래? 다음에 또 이러면 재미없다!”
두꺼비 모습 좀 봐. 재미있지? 한 발로 땅을 짚고서
두 발로 무어라 변명하는 것 같잖아.
유해가 나오는 또 다른 그림이 있어. 이정(1578~1607년)의
‘두꺼비를 탄 신선’이야. 아까 이 두꺼비는 어디든 데려다 준다고 했지?
지금 유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중이야. 입에서 무얼 막 내뿜고 있어.
그런데 재미나게도 유해와 두꺼비의 얼굴이 서로 비슷해.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닮는 거지.
심사정의 두꺼비를 탄신선
●단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 그림은 심사정(1707~1769년)의 작품이야.
그림 위쪽에 ‘玄齋(현재)’라고 심사정의 호가 쓰여 있지.
심사정은 뛰어난 화가였지만 그의 삶은 비극이었어.
심사정은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났어.
증조할아버지가 영의정이었고, 친척 중에 임
금의 사위까지 있었거든. 문제는 할아버지 심익창이었어.
과거 시험을 감독할 때 답안지에 이름을 바꿔치기하다
들통났거든. 요즘도 시험 때 부정행위는
엄하게 처벌하잖아. 정직과 양심이 최고였던
조선시대에는 더욱 용서될 수 없었지. 심익창은
이 일 때문에 관직을 빼앗기고 10년이나 귀양을 살았어.
여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그다음엔 더 큰 일을 벌였지.
나중에 왕위에 오를 영조 임금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지 뭐야.
임금에게 반역을 꾀하는 건 가장 큰 죄야. 당연히
심익창은 죽었고 집안도 완전히 무너졌지.
이때 심사정의 나이 18세. 이 일로 심사정은
벼슬할 뜻을 영원히 접어 버렸지.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삶의 보람을 찾기 시작했어.
죽은 다음에 세워진 묘비에 이렇게 쓰여 있을 정도였지.
‘평생을 근심과 걱정으로 쓸쓸하게 지내면서
단 하루도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겸제 이정선의 하마가자(蝦蟇茄子), 견본채색, 20.8 x 30.5cm
하마가자(蝦蟇茄子)'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그림은 두꺼비와 가지를 그렸습니다. 가지는
보라색 꽃과 함께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늘색 도라지꽃이 보라색 가지꽃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초충도는 겸재가 70대 후반인 노년기에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초충도를 통해 노년기 겸재가 가졌던 서정성과
섬세함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움과 함께 즐거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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