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영모화.화조도(김홍도)

이모르 2020. 12. 24. 19:51

 

 

 

매화도

 

 

 

조선후기 최대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하지만 그 일생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이 아래에 소개하는

조희룡이라는 당시 사람의 증언이다.

조희룡(趙凞龍.1789-1866)은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라는 사람과

친분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조희룡의 문집 <<호산외기>> 중에 '

김홍도전'(金弘道傳)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홍도는

원래 집이 가난하여 간혹 끼니를 잇지 못했다.

어느날 우연히 부잣집에 들렀다가 매화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김홍도의 눈엔 탐나는 매화이고 화선지에

옮기면 완벽한 매화그림이 될 것아

주인에게 말을 거넸다

참 멋진 매화입니다 그런데 저 매화

나무를 팔 수도 있는 겁니까?

글쎄요 한 200냥은 받아야 되겠죠!!”

 

엄두도 못낼 돈 200냥이라 아쉬움으로

집으로 돌아온 김홍도 앞으로 어느사람이

300냥을 보내주면서 그림을 그려 달라

하는 고로 김홍도는 신바람이 났다

 

그는 당장에 화선지를

펴고 붓을 들어 신들린 듯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의 경지는 이미 세간에 넓리 알려진 터였다

그림을 건넨 김홍도는 급하게 부잣집으로 가서

200냥을 내고 매화를 구입하고 800냥으로 술몇되를

사서 동인(同人)들을 모아 매화(梅花)를 감상하는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한다

 

그돈의 출처는 김홍도를 알아본 부잣집

주인  이었는데 김홍도의 주머니엔 매화구입비

200냥을 제외한 남은 1백냥 중 술값으로 80냥이 나가고

나머지 20냥으로 약간의 양식과 땔나무를 구입하였다한다

김홍도는 그날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일을 두고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 한다

 

이렇듯 소탈하고 광달함이 이와 같았고

 

꽃과 새 나비 학들과 같이 풍류를 좋아했던 김홍도의

花鳥圖는 꽃과 새를 어우러지게 그린 그림을 말한다

화조도는 가장 대중화된 우리 그림인데

8-10폭 병풍그림으로부터 손바닥크기의 작음그림까지

다양한 형태로 그려졌다

화조도는 화려한 꽃과 다양한 새의 결합으로 다양한 형태로

그려졌다

조선시대에는 털 달린 새와 짐승이란 의미의

영모화(翎毛畵), 꽃과 풀을 뜻하는

화훼도(花卉圖)를 분리해서 보았다. 그러니까

화조도는 새와 동물그림을 잘 그리면서

동시에 꽃과 풀 따위를 모두 잘 그리는 화가라야

"화조도를 제대로 그릴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조선 말기

명인들의 12폭 화조도의 가격은 집 한 채를 사는 것과

맞먹었다고 한다,

 

여기 김홍도의 영모화.화조도 몇점을 소개한다

 

 

마상청행도

 

비금도

화조도

 

게변수금도

고목비금도

쌍작보희도

작도

춘경도

군작보희도

매화도

호음도

매직도

 

국수비슬도

 

화조도

호취조

화조도(메추라기)

화조도

 

화조도

검선도

 

노선취생도

 

새영접첩

 

원숭이 영접첩

 

연꽃있는 못의게

 

추후간화도의 학그림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종이에 채색/30.1×46.1cm/ 간송미술관 소장.

섭우도지본담채(紙本淡彩), 28.2x48cm, 개인 소장

 

송하맹호도. 견본수묵담채, 90.4 x 43.8cm, 호암미술관 소장.

 

 화조도’, 종이에 담채, 26.7X31.6 cm, 호암미술관

 

쌍치도

화조도

 

향사군탄 자본담채 30.5 cm X 23.2cm 간송미술관 소장

 

유하백로도

 

화조도

나금화조도

비학도

쌍치도

화조도(초봄 매화가 피었고 잔설이 남아있다)

 

유앵도

모구양자도

화조도(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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