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북한지(北漢誌)

이모르 2020. 12. 13. 10:10

 

〔북한지의 槪觀〕

 

 

 

■ 의미

 

 

북한산성 축성에 관한 기록이 오늘날까지 상세하게 전해지는 이유는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서의 기록뿐만 아니라

 

「북한지」(北漢誌)라는 사료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지는 한마디로 북한산성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담고 있는 역사지리서로써 북한산성 축성을 담당한 승려 성능(聖

 

能)이 산성기사(山城記事)를 편집하여 영조21년(1745년) 간행한 책이다.

 

 

 

북한산성의 축성은 팔도도총섭(전국의 승병을 총괄하는 직책)이라는 직책을 맡은 「성능」의 지휘 아래 축성되었다.

 

 

성능이 산성 완공 후 산성축성의 총본부인 중흥사에 기거하면서 틈틈이 집필하여 34년 후 영조21년(1745년)에 탈고

 

한 것이 이 「북한지」이다. 담당자의 기록인 만큼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저자

 

 

북한지의 저자는 숙종, 영조시대의 고승인 성능이다. 경북 예천 사람으로 지리산 화엄사에서 입적하여 그의 부도가

 

화엄사 억만고터에 세워져 있다.

 

 

북한산성 축성 당시 팔도도통섭 겸 승병대장으로 승군을 지휘 감독하며 북한산성의 축성 및 수비를 담당하였다. 30여

 

년간 북한산 중흥사에 머물면서 중흥사, 태고사를 중창하였고 진국사(지금의 노적사), 봉성암, 원효암 등을 창건하였

 

다.

 

 

 

■ 북한지의 구성

 

 

북한도(3장), 북한산성과 관련된 내용을 기술한 14개 항목, 발문(跋文, 성능)

 

 

 

 

〔북한지의 내용〕

 

 

 

■ 북한도(北漢圖)

 

 

(북한산성을 그린 3장의 지도)

 

 

-북한산성의 윤곽, 봉우리의 위치, 성문 및 장대 등 각종 시설물의 위치, 계곡 표시, 길 표시 등을 세 방향으로 표시

 

한 지도이다

 

 

 

 

 

 

 

 

 

■ 도리(道里)

 

 

(북한산성에서 각 고을까지의 거리를 표시)

 

-북한산성이 한성부 관할이라고 명시

 

 

■ 연혁(沿革)

 

(삼국시대부터 북한산성의 역사를 기록)

 

-백제 온조왕 14년(BC 5년)에 최초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 산계(山谿)

 

(북한산 봉우리, 계곡 등 산세별 위치 표시)

 

-봉우리 : 43개 봉우리의 위치를 표시하였으나, 미확인 된

 

형태의 봉우리, 8개의 대)

 

-계곡 : 12개의 계곡 위치 표시

 

-담(潭) : 3개의 위치 표시

 

-폭포 : 3개의 위치 표시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가장 연구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 성지(城池)

 

(산성의 규모, 시설물 표시)

 

-산성의 규모

 

○ 성의 둘레는 7620步(현재 길이로 약8.5km)로 고축(高築)은 2746보, 반축은 2906보, 반반축은 511보, 지축여장은

 

1437보이다.

 

○ 성을 쌓는 형태는 산세와 관계가 있으며 평지에 가까울수록 고축, 위로 갈수록 반축이나 반반축을 쌓고, 지세가 험

 

하여 능선 자체가 자연 성벽 역할을 하는 곳에는 지축여장이라하여 성가퀴만 쌓는 방법이다.

 

 

○ 부대별 축성 범위를 표시하고 있다. 지금의 원효능선에서 용암봉까지는 훈련도감이, 산성주능선에서 대남문까지

 

는 금위영이, 의상능선에서 대남문까지는 어영청이 담당하였다.

 

 

-성문

 

○ 숫자로는 14개의 성문이라고 하였지만 북문, 대동문, 대서문, 대성문, 중성문, 소동문, 소남문, 서암문, 백운봉암

 

문, 용암봉암문, 동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수문 등 15개의 성문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 이는 연구해야할 과제로 소남문이 부왕동암문인 점을 감안하며 기록(표현) 방법에 뭔가 착각이 있었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장대 :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등 3개의 장대 위치 표시

 

-성랑 : 성랑이란 군사들의 숙소를 이야기하며, 총143개를 건립하였다.

 

-저수지 : 26개

 

-우물 : 99개

 

 

■ 사실(事實)

 

(북한산성 축성에 관한 과정과 축성 배경 및 축성과정)

 

-추후 정리

 

 

■ 관원(官員)

 

(경리청과 북한산성의 총괄관리를 담당하는 직책과 인원 기록)

 

-도제조, 제조, 낭청, 관성장(管城將, 상주인원) 등 4명의 선임 방법 기록

 

 

■ 장교(將校), 이졸(吏卒)

 

(북한산성 각 조직의 직책과 인원 : 7개 조직, 1645명)

 

-경리청 : 23명 (군인 7명)

 

-관성소 : 1178명 (군인 1160명)

 

-승영 : 410명

 

-훈련도감 유영 : 10명

 

-어영청 유영 : 12명

 

-금위영 유영 : 9명

 

-호조 : 3명

 

 

 

■ 궁전(宮殿)

 

(행궁의 위치, 규모, 구조)

 

-내전 28칸, 외전 28칸

 

 

■ 사찰(寺刹)

 

(북한산 소재 21개 사찰의 연혁과 이 사찰들과 관련된 詩文)

 

-향림사, 적석사, 청량사, 승가사, 삼천사, 진관사, 도성암, 문수사, 중흥사, 용암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 원각사

 

, 국녕사, 상운사, 서암사, 태고사, 진국사(성능), 봉성암(성능), 원효암(성능) 등 21개 사찰을 기록하였다. 이 중 북한

 

산성 내에 위치한 사찰은 14개로 중흥사를 제외하고는 북한산성 축성 후 창건한 절 들이다.

 

 

 

■ 누관(樓觀)

 

 

(누관의 위치 및 관련 시문)

 

 

-누관이란 적의 동태를 망보는 누각으로 항해루, 산영루, 세심루 등 3개 표시

 

 

■ 교량(橋梁)

 

(다리의 위치)

 

-환선교, 언룡교, 강선교, 환선교, 봉황교, 청운교, 백운교 등 7개

 

 

■ 창릉(倉庱)

 

(창고의 위치 및 3군의 위치)

 

-경리청 상창, 중창, 하창, 평창, 호조창 등 6개 창고의 위치

 

-금위영, 어영청, 훈련도감 등 3군의 위치

 

 

■ 정계(定界)

 

(3군의 관할 구역을 표석을 세워 표시)

 

-훈련도감 : 북문에서 달현까지, 원효봉에서 노고산 선봉까지, 수구문에서 지장리의 노고산 산등성이까지

 

-금위영 : 대성문에서 정릉리 앞까지, 동문에서 수유현까지, 동장대에서 장현까지, 용암봉에서 우이천까지

 

-어영청 : 여기현에서 지장리 마분까지

 

 

■ 고적(古蹟)

 

(고적에 관한 내용과 관현 시문)

 

-고석성 : 북한산성 축성 이전의 성

 

-신혈사

 

-최공전지 : 장군봉일대를 최영장군의 싸움터라는 설

 

-민공의 유서 : 고려 문인공 민지의 유지

 

 

 

■ 발문(跋文)

 

(북한산성 축성 이후 성능의 심정과 북한지를 펴내는 과정 간략히 기록)

 

 

출처 :북한산연가 원문보기 글쓴이 : san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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