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詩

벼슬을저마다하면 김창업

이모르 2020. 12. 30. 11:58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 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려하랴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위 시조는 金昌業 1658-1721 의 시로 아버지와맞 형이 모두 영의정을 지낸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벼슬을 마다하고 청나라에 다녀와서 연행일기와 산수 인물그림을 그리며 양반가의 법도를 무시하고 제 뜻대로 살아간인물이다.(옛시조 감상에서 밝춰 편집)
우리네 지금의 생활도 마찬가지여서 저마다 아이들 교육에열 올리고 모두가 화이트칼라가 되기를 원한다.공장 농사일 힘든 일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고농촌으로 시집가기를 한사코 마다하여 노처녀로 늙기를자처한다.
혹자들은 노숙자들에게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그러고 있느니 어디 공장이라도 들어가 밥벌이 하면 되지않겠느냐.??
시대가 모두 어려워지니 軍 의 준사관도 요즘은 인기직종이돼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하고 은퇴한 장교들도하사관으로 들어간다고 하니우리에게도 직업관이나가치관이 달라지려나.??  

여기 단원과 혜원의 풍속도를 올리는것은 조선 후기의 시대상황과

김창업의 벼슬을 저마다 하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수 있을것

같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본관 고령. 자 입부(笠父). 호 혜원(蕙園). 김홍도·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된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남종화풍의 산수와 영모 등에도 뛰어났다.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며, 그의 부친 신한평과 조부는 화원이었으나 그가 화원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전해진 작품에 남긴 간기(干紀)로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처네를 쓴 여인》에 있는 1829년이 가장 하한인 바 대체로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화원이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해도 직업화가로, 당시 수요에 따른 많은 풍속화를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으로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한 《혜원전신첩》이 전한다.

 

모두 30여 점으로 이루어진 이 화첩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 외국에도 잘 알려진 그림이다

 

사회 각층을 망라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달리 도회지의 한량과 기녀 등 남녀 사이의 은은한 정을 잘 나타낸 그림들로 동시대의 애정과 풍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탄금(彈琴)》 등 6점으로 된 화첩 또한 명품이다

 

 

 

 

아울러 초상기법으로 그린 《미인도(》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 걸작으로 손꼽힌다.

 

 

장옷/신윤복 (간송미술관소장)

 

 

야금모행 - 신윤복

 

늦은 겨울 밤 기생이 동침을 원하는 양반을 따라 어디론가

가는 모습.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다 그렇고

그랬나보다.

붉은 옷을 입은 별감이 양반과 기생의

성매매를 중개하고 있습니다.

 

 

연소답청 - 신윤복

'연소답청'이란 젊은 선비들이 푸른

새싹을 밟는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양반들의

유한놀이 문화인

들놀이를 말합니다.젊고 늙은 양반들이 종과

기생을 앞세워 풍취

좋은 산천을 찾아 즐기고

돌아오는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그렸습니다.

 

상춘야흥 - 신윤복

 

진달래 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봄날, 양반가의

후원에서 벌어진

연회의 흥취를 그렸습니다.

음악에 흠뻑 취한 주빈의 표정이 이 날의 연회가

아주 성공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정변야화 - 신윤복

어스름 봄밤에 우물가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것으로 물을

길러 온 두 여인이

춘홍이 오른 듯 보름달 아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돌담 뒤에서 음흉한

양반이 두 여인을

몰래 훔쳐보고 있습니다.

 

 

월야정밀회- 신윤복

 

인적이 끊어진 골목길 보름달이 비치는

담 그늘 아래에서 한 남자가

여인을 위압적으로 감싸 안고 있습니다.

담모퉁이에 비켜서서 조마조마하게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은

그림 속의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무녀신무 - 신윤복

 

조선 말기에 유행했던 민간의 굿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무녀와 여인들이 마당에 옹기종기

앉아있고 담 너머에서

한 사내가 여인들을 훔쳐보고 있습니다.

 

삼추가연 - 신윤복

어린 기생의 '머리를 얹어주는' 초야권을 사고 파는 장면.

뚜쟁이라 할 수 있는 늙은 할미가 기생과 초야권을

사는 사내의 중간에서

중개를 하고 있습니다.

 

 

쌍검대무 - 신윤복

국보 135호.

넓은 마당 한 가운데서 쌍검을 들고 춤을 추는 두 검녀의

아슬아슬한 대결을

정방향 구도와 인물들의 회전 운동으로 그려 정중동의

운동감을 세련되게 표현했습니다

 

이부탐춘 - 신윤복

이부는 과부를 뜻하니 소복을 입은

여인이 마당에서 짝짓기 하는 개와

참새를 보고 웃음을 머금고

몸종이 나무라듯 그 허벅지를 꼬집는 장면입니다.

해학적이면서도 여필종부를 강요하는 남존여비사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월하정인 - 신윤복

달빛 아래에서 두 남녀가 안타까운 정을 나누는 장면을 숨막힐 듯

섬세한 필치로 묘사했습니다.

안타까운 두 사람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기방무사 - 신윤복

기생이 외출했다가 돌아오고 있는데 그 사이 왠 사내와 와 몸종이 방안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왼쪽 나무잎이 무성한걸 보니 계절은 더운 여름.

날이 더우니 기생도 전모를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한여름에

이불을 덮고 있을까?방안의 두 남녀는 이상한 짓(?)을 하다가

갑자기 주인기생이 찾아오자 누비이불을 덮은 것은 아닐까? 알수없는 일이다.

 

 

 

 

신윤복 제 작 연 대 : 연대미상

소 장 처 : 국립중앙박물관

재 료ㆍ크 기 : 종이에 옅은 채색, 150.3×42.0㎝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이 대쾌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놀이인 택견과

씨름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유숙의 <대쾌도>와 거의 유사한데,

원산의 배치, 인물들의 배치가 조금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동일한 화면이라고 할 수 있다.

화면은 세로로 길게 배치되어, 상단의 산수를 배경으로한 기생과 가마의 장면, 중단의

씨름과 택견을 하는 장면화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 하단에는 술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하고 있는 장면 등 세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으로 둘러싼 공간에

씨름과 택견을 하는 인물과 구경군들은 구도가 다소 느슨하지만 인물들의 동작은 경쾌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인물들과 원산의 나무 표현에는 김홍도 화풍의 영향이 감지된다

 


출처 목림회

 

너울  

조선시대 서민은 가족노동을 기반으로 농사일에 종사하였고,소비물자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였다.당시 자급자족 할 수 없는 수공업제품이나 소금, 생선, 건어물 등 각종 물품들은 상인 을 통해 구입하였는데, 지방의 장터는 상인과 일반민간의 상품거래라는 경제기능 외에 오락, 공연, 음주, 서신교환, 친지대면 등의 기능까지 겸했다. 장터는 이웃마을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통신 매체였으며,그에 따라 농사정보와 사회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공공 매스컴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장터에서 거래되는 물건의 운반도구로는 지게가 가장 일반적이었는데, 소가 있는 집이라면 운반한 물건을 소에 매고 갔다. 소는 논밭갈이와 운반수단으로 이용하였는데 가난한 농민이 소를 장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소로 농사를 짓고 가을에 빌린 값을 주거나, 지주집의 송아지를 길러 사용한 후 나중에 소를 팔고 그 값의 절반을 돌려주거나, 송아지를 어미 소로 만든 뒤 다시 송아지로 갚거나, 마을 사람 공동의 명의로 소를 사서 부리는 방법 등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조선시대 서민의 생활상은 풍속화에 잘 나타나 있는데,김홍도의 <평양감사환영도>에 그려진 장터의 풍경에서도 소나 말에 짐을 지운 서민, 등짐을 지고 가는 상인, 지게에 물을 실어 나르는 물장수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평양감사 환영도/김홍도

김홍도의 정겨운 그림속에서 그시대의

생활상을 그려본다

 

1745년에 태어난 그는 중국의그림을 모방하는 화법에서

벗어나 우리민족 정서에 맞는 독특한 화법을 이룩하였다

특히 서민들의 생활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무술연마 (교관의 자세교정이 인상적이다)

 

아버지는 가마니 짜고 어머니는 물레돌리고 아들은 글읽는 모습이 정겹다

 

서당 (가운데 벌서는 학동이 인상적이다)

 

스님들 앞에선 댕기머리 처녀가 장죽을 들고있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부부가 정겹게 그려졌다

 

추수하는 농부들을 감시하는 양반주인도 밉지않게 그려졌다

 

대장간의 풍경

 

로드 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장많이 보아왔던 씨름판

 

모퉁이 고갯길을 넘는 여행객들

 

1960년대 농촌 풍경과 다를게 없다

 

도강하는 풍경

 

혼례가 끝나고 신행길에 오른 풍경같다

 

나무짐 내려놓고 고두놀이 하는 동리 총각들

 

길쌈은 우리 어릴적에도 똑같은 풍경으로 보여졌다

 

말발굽 박기

 

주막집 풍경

 

기와 공사

 

죽방 요즘 tv에서도 이런죽방이 방영된다

 

일터에서 새참 먹는 장면 아낙은 아이에게 젓을 먹인다

 

우룰가 아낙들에게 물을 청하여 먹는 객 을 외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송광호 칼럼 <34> 조선시대 전통 복장 4

작성자: 사색의향기 /작성일 : 2009-09-20 12:08

조선시대 전통 복장 4


궁중 복식 (남성)

조선시대 왕실을 비롯해 관리들이 입는 전통복식내용입니다.
옛 복식은 한문으로 표기된 전문용어가 많아 이해가 쉽지 않지만 옛 우리 선조들(남성)이 입던 옷의 모습을 일부 소개합니다. 지난1962년 조선문학 예술총동맹출판사가 발행한 ‘리조복식도감’에서 뽑은 내용으로 남북한 자료를 비교,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




* 면복(冕服): 임금이 가장 정중한 예식과 큰 명절에 입는 대례복입니다. 보통 제왕의 정복으로 말하며 면류관(冕旒冠)과 곤룡포를 입습니다. 어깨에는 용을, 등에는 산을, 양 소매에는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 각3개씩 그렸습니다. 면복을 특징지어주는 것은 면류관의 면류와 곤복의 장문입니다. 장문가운데 일, 월, 성신(星辰)은 황제만이 표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황제는 12장복, 조선국왕은 9장복, 왕세자는 7장복, 왕세손은 5장복 입니다.




* 곤룡포(袞龍袍):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입는 정복(正服)을 말합니다. 준말로 용포, 또는 곤복이라고도 합니다. 두루마기와 같은 웃옷입니다. 노란색, 또는 붉은 색 비단으로 지었고 황색 단(緞)이나 사(紗)에 붉은 색 안을 넣었으며, 가슴, 등, 양어깨에는 보(補)라고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五爪龍)을 붙였습니다.




* 익선관(翼善冠)과 원유관(遠遊冠): 익선관은 임금이 평상시 정무를 볼 때 쓰던 관입니다. 이때 곤룡포를 입습니다. 원유관(遠遊冠)은 임금이 신하로부터 조현을 받을 때 쓰던 관으로 이때는 중국황제처럼 강사포(絳紗袍)를 입습니다.




* 홍라(紅羅)착수의: 무대복식의 하나로 무향산에 입습니다. 남끝동을 달았는데 깃과 동에 화문을 금박하였습니다. 깃은 단령(깃을 둥글게 판 것)이고 뒤 무는 터져서 세 자락으로 되었는데 안에는 엷은 남색 비단을 대었습니다. 밑에는 흰 치마에 검은 선을 둘러 입고 그 위에 녹색비단으로 지은 쾌자를 입습니다. 목에는 금가자를 붙이고 손목에 녹색비단 한삼을 매며 머리에는 야광모를 쓰고 허리에 학정야대를 띠며 릉파리를 신습니다.




* 남철릭: 조선시대 무신이 입던 공복으로 상하가 연결되게 남사로 지었습니다. 콩래 소매에는 잔주름을 잡아 만들었는데 두리 소매이고 고름을 달았습니다. 선유악과 고구려에 사용했으며 특히 선유악에는 진홍관대를 띠며 사동개, 화동개, 환도(還刀) 등을 허리의 뒤와 옆에 차고 등편을 짚습니다. 머리에는 붉은 대갓에 공작 깃 또는 호수를 꽂아 쓰고 수혜자(水鞋子)를 신습니다. 당상관(堂上官)은 남색을, 당하관(堂下官)은 홍색을 입었습니다.




* 초록 석죽화 전복: 무대복식의 하나인데 무동복에 속하는 것으로 공악무에사용합니다. 초록바탕에 석죽화(石竹花)의 무늬를 놓은 소매가 좁은 옷입니다. 허리에는 청금 수띠를 앞으로 매여 끈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위에 학정띠를 띱니다. 머리엔 고운계 또는 주취금관을 썼습니다.




* 비란삼: 비란삼(붉은 명주로 만든 란삼)은 속악차비공인과 순, 탁, 요, 핵, 응, 아, 상, 독 및 정절을 잡는 공인들이 입었고, 조주란삼(검은 명주로 만든 란삼)은 아악의 문무 무공인과 둑기 잡는 공인이 입었다고 합니다.




* 홍주의(紅紬衣): 무대복식 중 악공들의 웃옷으로 화화복두(花火幞頭) 또는 국화복두를 쓸 때 착용합니다. 악공의 복식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악공은 홍주의, 녹라포에 남색바탕에 검은 선을 두른 중단을 입으며, 오정대와 금등야대를 띠고 흑피화 또는 오화, 흑화를 신습니다.




* 녹단령: 무대복식의 하나로 가자(노래 부르는 사람)가 입는 웃옷입니다. 수박색바탕의 단령(團領/조선시기 모든 관원이 착용한 일상복)으로 흰 한삼(汗衫)을 붙입니다. 머리에는 자주색 두건을 쓰고 허리에 자주광대를 띠며 흑화를 신습니다.




* 화접포(花蝶袍): 무대복식의 하나로 박접에 사용하던 웃옷입니다. 그 형태는 홍주의, 홍라포, 화금포, 록초삼 등과 비슷합니다. 초록바탕에 나비 무늬를 그렸고 깃은 직령(깃이 곧게 된 것)이며, 무는 뒤와 옆이 터지고 앞자락은 두 폭으로 되어 있는 것과 통폭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흰 바탕에 검은 선을 두른 중단 위에 검은 바탕에 남선을 두른 치마를 두르고 그 위에 입습니다. 주전대(珠鈿帶)를 띠고 무리(無우履)를 신습니다.




* 립: 무대복식에 속하는데 관, 모와 같이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해당 무에 해당 립, 관, 모들을 구별하여 사용해 왔습니다. 투구는 베를 배접하여 만들었는데 겉은 흑단으로 싸고 안은 홍초로써 댑니다. 정수리에는 금증자를 달고 또 홍상모를 답니다. 모자 좌우에 금운월을 붙였으며 채양 안은 홍단을 대고 자주 끈을 단 것으로 정대업에 사용하였습니다. 검기전립은 전립의 모자가 깔대기처럼 뾰족하고 금속증자로서 장식하였습니다.
주립은 무동이 쓰는 것으로 주칠한 갓에 증자를 달고 양옆에는 공작의 깃을 세우고 갓모자 네모에 호수를 꽂으며 밀화로 패영을 길게 만들어 늘어 뜨립니다. 금화칠립은 무동(舞童)들이 쓰는 것으로 칠립에 꽃을 곱게 만들어 꽂았습니다. 무대복식에 속하는 관, 립, 모들은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입니다.




* 복두(幞頭)와 당건(唐巾): 조선초기에는 공복(公服)에 복두를 신들과 악공들이 착용하였으나, 차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나 악공들만이 착용하였습니다. 그 제도는 종이를 배접하여 만드는데 안에는 가는 베를 바르고 검은 칠을 하며, 양쪽에는 뿔이 있고 모자 앞뒤와 양쪽 뿔에 채색으로 꽃을 그리기도 합니다.
당건(唐巾)은 전악(典樂/ 궁중음악) 또는 협시(挾侍/)들이 쓰는 것으로 양쪽 뿔이 아래로 처집니다. 조선 중기 사대부(士大夫)들이 평상시 쓰던 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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