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 보훈의달입니다
험란한 시대에 탄압에 굴하지 않고 불꽃처럼
산화해간 호국영령 을 추모합니다
친척 번개 모임으로 독립문공원을
견학합니다
산책길은 쾌적하여 즐거게 담소하며 우의를
다졌습니다
8순을 바라보는 큰누님은 안산길을 잘도 걸었습니다
즐거운 사진을 담아 추억으로 남겨 봅니다
독립문의 배경(위키백과)
조선 시대에는 명의 사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서대문 근처에 영은문을 건립하고, 근처에는 사신을
맞이하는 모화관을 건립하였다.
'영은'은 은혜로운 대국의 사신을 맞이한다는 뜻이며,
'모화'는 중국을 흠모한다는 뜻이다. 명에 대한
조선의 관계는 소중화사상으로 이어져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로 교체된 뒤에도 계속되었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으로 인한 청나라에
대한 반감에 더하여, 예전부터 발해와
고려 조선을 형님의 나라이며 상국으로 받들던
여진족에 대한 멸시 등이 복합되어
반청 감정은 고조되었고, 북벌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청나라에 대한 반감은 19세기까지 이어졌고
청나라가 유럽 열강과의 전쟁에서 패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해야 된다는 여론이 강하게 나타났다.
1890년대 에서재필은 영은문과 모화관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재필은 직접 프랑스의 개선문 사진을 보고,
이를 참고하여 독립문의 모양새를 직접 스케치했다.
이는 1896년 스위스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에게 보내졌다
독립문 전면에는 영은문이 서 있던 기둥돌이 함께 남아 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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