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상제상서

이모르 2021. 1. 6. 14:44

 

 

 

여행을 다니다 보면 성인들의 숭고한 업적과 의지에 정신마저

혼미해질 때가 많다

인간의 한계로 친다면 도저히 이룰수 없는 신념과의지는

분명 어떤 절대자의 힘으로만 움직일수 있는 神적 세계라 생각

된다......

 

아름다운 예봉산은 여러 가지 야생화가 피어있는 곳이다

갑산쪽에서 예봉산 정상쪽으로 가다보면 철문봉이라는 안내

표식입판이 세워져 있다 거기는 조선의 빛 다산 정약용의

형제들이 고향 남양주 마재 에서 철문봉까지 등산하여 학문을

연마 하던 곳이라 하여 철문봉 이라 하였다한다.

 

 

 

 

 

 

 

 

 

 

 

 

 

 

 

 

 

 

 

성 정하상의 약력

 

1795년

경기도 양근 마재(현 경기도 양주군 와구면 능내리)에서 부친 정약종과 모친 류 세실리아의

둘째 아들로 출생.

 

1814년경

함경도 무산에 귀양가 있는 조동섬을 찾아 수년간 교리와 한학을 수학

 

1816년

 

부경사대사신(赴京使大使臣)의 사행 기회에 틈타 9차례나 북경을 왕래하며

수자-사라이바가 주교에게 사목자 파견 청원 시작 1823년 부경사대사신(赴京使大使臣)의

역관 유진길, 노복 조신철과 함께 북경 주교와 꾸준히 교섭.

 

1825년

 

조선에 신부를 파견하고 또 계속적으로 보내줄 것을 골자로한 대 교황 청원문 발송

 

1827년

 

교황청 포교성성이 정하상과 유진길의 청원문 접수

 

1831년 9월 9일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에 의해 조선교구 설정 선포 파리 외방 전교회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선교를 자원

 

1834년말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비밀리에 영입

 

1835년

 

모방(Maubant) 신부를 비밀리에 영입

 

1836년

 

샤스땅(Chastan) 신부를 비밀리에 영입

 

1837년

 

조선 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Imbert) 주교를 영입

 

1837년 - 1839년

 

앵베르 주교로부터 방인(邦人) 사제를 위한 신학교육을 받음

 

1839년 6월 1일

 

노모 류 세실리아와 누이 엘리사벳과 함께 체포, 최초의 호교론인

상재상서(上宰相書)를 통해 천주교의 도리를 펴고 박해를 중지 하도록 주장

 

1839년 9월 22일

 

기해박해로 45세에 군문효수(軍門梟首)로 순교

 

1925년 7월 5일

 

한국 순교자 79인과 함께 복자로 시복(諡福)

 

1981년 3월 31일

 

광주 신장본당 변기영 신부가 현 광주군 동부면 윗배알미리 검단산 북쪽 계곡에 있는

부친 정약종의 묘소 근처에서 정하상의묘소 발견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 순교자 103위(김대건 신부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와 함께 시성(諡聖)

 

 

 

 

 

성 정하상(丁夏祥)

 

기해 박해 때인 1839년 9월22일 서소문 밖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로 45세에 순교했다

 

 

기해박해때 순교한 천주교인들을 기념하는

남한산성터에 현양비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배교 하지 않고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한국 천주교회 초기 평신도지도자로서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정약종의 둘째 아들이고, 실학자 정약용의 조카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축일은

9월20일, 본관은 나주(羅州).부친은 실학자 이익(李瀷)의

학문을 이어 서학을 연구하고,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에 참여한 초기 평신도 지도자였으며,

1801년 순교했다.

 

순교적 희생으로 진리를 증언한 순교자인 아버지와 신심이 유달리 깊었던 어머니

유 세실리아의 인도로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앙을 깨우쳤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부친과

친형 철상이 서소문 밖에서 처형당하여 순교하자 나이 7세인 정하상은 누이동생 정혜와

어머니를 모시고 마재(경기도 양주군 마재부락)의 큰 댁으로 낙향했다.

 

20세때 단신 상경하여 여교우 조증이 집에 의지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교리와 학문을 철저하게 익히기 위해 함경도 무산에 귀양가 있는 조동섬(유스티노)을

찾아가 수년 간 학덕을 닦았고, 서울로 돌아와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종횡의 활동을 펴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로 오직 한 분이던 성직자 주문모 신부와 대표적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한 후 좀처럼 부흥의 계기를 찾지 못하는 조선 천주교회를 위해 첫째로 흩어진

교인들을 찾아내 신앙의 불길을 다시 태우게 하고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조직화하는 한편,

한국 교회에 다시금 성직자를 파견해 주도록 북경에 있는 주교를 상대로 성직자

영입운동을 추진하게 된다.

 

그는 이 어려운 사업을 현석문(가롤로)과 유진길(아우구스티노)등 희생적이며

유능한 동지의 힘을 모아 추진했다. 정하상은 북경의 주교에게 한국 교회에 성직자를

파견해 주도록 직접 호소하기 위하여 1816년 이후 전후 아홉 차례나 국금(國禁)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복 5천리의 길을 엄동설한에 노복의 비천한 역무를 담당하며

부경사대사신(赴京使大使臣)의 사행 기회에 틈타 북경을 왕래하며 북경주교에게 계속 청원했다.

 

그러나 당시 북경교회의 사정도 여의치 못하여 한 사람의

성직자도 조선으로 파견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1823년부터 정하상은 국내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의 일을 맡아보면서 역관으로 북경과의 연락이 용이한 유진길과 부경사행의 노복인

조신철을 밀사로 북경교회와 꾸준히 교섭케 했다.

 

정하상의 성직자 영입운동은 마침내 세계 교회로 확대된다. 즉 북경주교를

대상으로 하는 성직자 영입운동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움을 체험적으로 간파하게 된

정하상은 마침내 세계 가톨릭의 최고 수위권자인 교황에게 청원하기로한 세계적

경륜의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1825년 정하상은 유진길과 의논후 "저희들은 교황성하께 두 가지 일을 겸손되이

제안하옵는데, 이 두 가지가 똑같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나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옵니다...신부를 파견하는 것이 저희들로서는 큰 은혜요 저희들에게

크나 큰 기쁨이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오나, 이와 동시에 저희들의 욕구를 영속적으로

채워 주고 장래에 있어서 저희들의 후손들에게 영신적 구원을 보장하여 줄 방법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충분한 일일 것입니다." 라고 매우 함축적인 내용을 담은

대 교황 청원문을 올렸던 것이다.

 

성직자의 파견만이 아니라 영속적인 구원을 보장할 적극적인 대책을 청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청원문은 북경주교의 동정 어린 배려로 마카오 교황청 포교성성 동양경리부로 보내졌고

그 곳 책임자인 움피에레스 신부의 의견이 첨부되어 1827년 로마 교황청에 접수되었다.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의 주선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전교 성직자이던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선교를 자원하여 마침내 1831년 9월9일자로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전기 카펠라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임됨)에 의해

조선교구의 설정이 세계에 선포되었다.

 

 

 

 

 

 

정정혜는 정하상의 동생으로 경기도 광주의 마재 에서

태어나 4살때 1800년 박해를 피해 가족들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고,

주문모 신부에게 성세성 사를 받았다.

1801년에 어린나이로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아버지와

이복오빠 정철상이 순교한 후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석방되어 삼촌 정약용에 게 의지하고 살았다.

성직자 영입운동을 하던 정 하상이 거처를 마련하자 모친과

함께 상경, 성직 자들의 처소를 돌보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1839년에 정하상과 함께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 끝 에

12월 29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성 정하상의 업적을 살펴보면

 

첫째, 그는 조선교구 설정의 직접적 계기를 이룬 진보적이고 세계적 안목을 가졌던 박해시대

 

한국 교회 평신도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둘째, 정하상은 조선 교구 설정 이후 조선 교구로 부임해 오는 성직자를 계속 영입해 들였고,

 

그 성직자들의 충실한 협조자로의 회장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하여 한국 교회 발전에 지극히

 

큰 공헌을 쌓았다.

 

즉 1834년말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비밀리에 영입했고 1835년 모방(Maubant) 신부,

 

1836년에 샤스땅(Chastan) 신부, 그리고 1837년에 조선 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Imbert)

 

주교를 영입했다. 이리하여 조선 교회가 교구장인 주교, 전교자인 성직자 그리고 교구 신자를

 

가지는 교회로의 교회 체제를 갖추게 했으며 이들 성직자를 협조하여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몸 바쳐 일했다.

 

셋째, 그는 앵베르 주교로부터 속성 신학교육을 받고 성직자가 되기 위해 선택된 한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적 열성과 교리에 대한 지적 이해, 그리고 놀라운 신덕에 탄복한 앵베르 주교가 베트남의

 

베리트 주교의 예를 따라 박해하의 조선 교회에 필요한 방인(邦人) 성직자 양성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학지(學知)와 수덕(修德)과 신망(信望)의 정하상은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1839년의 기해 박해가 일어나면서 앵베르 주교가 순교하고 정하상 자신도 순교하게 되어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넷째, 정하상은 한국 최초의 호교론서(護敎論書)인 상재상서(上宰相書)로 박해자에게 천주교의

 

입장을 밝히고 박해를 그치도록 문서로 힘있게 주장했다. 체포되기 전에 미리 저술하여 체포된 후

 

박해 당국자에게 제출된 상재상서(上宰相書)는 불과 2,000여 자의 단문의 글이나 가장 요령 있게

 

천주교의 도리를 펴고 박해가 그쳐야 할 것을 주장한 명문으로 이름 높은 소책자이다.

 

다섯째, 정하상은 생명의 극을 다하여 순교함으로써 천주의 신앙을 증거하고 영생의

 

영광을 얻었으며 한국인의 신앙을 굳게 실증했다.

 

그는 기해 박해 때인 1839년 9월22일 서소문 밖에서 45세를 일기로 순교했다. 그보다 두 달 늦게

 

79세의 노모 유 세실리아도 옥사 순교했고, 다음 달에 누이동생인 정혜마저 순교하였다. 이 세 분

 

순교자는 1925년 복자로 시복(諡福)되었고 1984년 5월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됐다.

 

성 정하상의 일생은 오로지 천주만을 위한 고귀한 것이었다.

 

출처:카토릭 성인 자료실

 

 

 

상제상서(上宰相書)

 

엎드려 아뢰옵건대 맹자가 양자와 묵자를 사설이라 하여 배척한 것은 그 사상이

유교학계를 해칠까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요,

 

한유가 석가와 노자를 쳐서 물리친 것은 그 사상이 일반을 미혹하여

혼란케 할까 했어였습니다.

 

옛 군자가 법을 세워 금령을 펼 때 반드시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하고 해됨이 있는가를 알아 보았습니다.

무릇 의리에 맞는 것이라면 비록 나무꾼의 말이라도 성인이 반드시 받아드려 내 버리면 안되는 말로

되어 있거늘 우리 나라의 천주성교를 금하시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습니까?

우선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몹시 원통스러운 말로 사교로 몰아 큰 법을 세워놓고

신유년(1801)을 전후 많은 인명을 없애면서도 한 사람도 그 기원과 전통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 이 도를 배우면 유교에 해를 끼치겠습니까 일반 백성을 혼란케 하겠습니까. 이 도인 즉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사용하고 늘 실행해야 할 도이오니 해가 된다던가 혼란이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감히 그 도리가 그릇되지 아니함을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천지 위에는 주재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만물이요, 둘은 양심이요, 셋은 성경입니다.

 

만물은 무엇을 말함이겠습니까.

집을 가지고 비유하건대 그 집에는 기둥과 지추돌이 있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있고 문과 창이 있고 담과 벽이 있고 간막이와 시렁이 척도가 틀리지 않고 모나고 둥금이 다 각각 제도에 따라 된 것이어늘 만일 기둥과 지추돌과 서까래와 문과 창과 담과 벽이 서로 홀연히 합해지고 저절로 섰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친 사람의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생각컨데 천지는 커다란 집입니다. 나는 것 뛰는 것 움직이는 것 심어 자라는 것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어찌 저절로 생겨 났겠습니까.

 

만일 저절로 이루어 졌다면 해와 달과 별들이 어떻게 그 위치를 지켜 그르침이 없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 순서를 그르치지 않습니까. 흥하고 망하고 번영하고 시들음을 지배하는 이가 누구이며 착한 자에게 복을, 음난한 자에게 화를 주장하는 자 누구이겠습니까. 높이 솟은 하늘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데 모든 세상 사람이 죽어 무덤으로 가는 것을 자연으로 돌림은 이는 마치 유복자가 그 아비를 보지 못했다하여 그 아비가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리있까.

 

세상사람들이 한편의 묘한 문장이나 한폭의 명화를 보면 흠모하고 찬탄하여 반드시 누구의 재주로 된 것인가를 물어 결코 평범히 무시하여 그저 보아 넘기지 않습니다. 우주의 만물이 가지각색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한없이 많은 것도 역시 일종의 명작이요 명화인데 예로부터 이제까지 거의 없다시피 드물게 이것만은 그 작자를 묻지 아니하는 것이 웬 일이오니까 이 세상 사물이 질(質)과 모(貌)와 작(作)과 위(爲)의 넉자를 벗어나지 못하옵니다.

 

질은 재료요 모는 상태요 작은 작자요 위는 이용함입니다. 가까이는 우리 몸에서나 멀리는 모든 물건에서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이와같이 위대한 천지가 어찌 그 작자가 없겠습니까. 만물을 보고 그 주재가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양심이라 함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일 밝은 낮이 캄캄해지고 우뢰와 번개가 서로 마주치면 어린 아이라도 떨며 무서워하고 눈을 부릅뜨며 발이 무거워서 몸둘 곳이 없음을 압니다. 이로써 선을 상주시고 악을 벌하시는 대주재께서 계심이 마음과 머리 속에 박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간에 어리석은 남녀들이 만일 당황하고 막다른 지경이나 슬프고 원망스러운 때를 당하면 천주를 불러 부러지지나니 이것은 그 본연의 심정이요 타고 난 천성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어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할 바를 몰라 두려워함이 모두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양심을 통하여 상주께서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옛적의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周) 공(孔)의 전기가 경서와 사기가 있어 나려 왔습니다. 만일 경서와 사기가 아니었으면 요 순 우 탕 문 무 공이 어떠한 사상이나 어떠한 제도를 전하였는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상이나 제도가 대쪽에 새겨지고 책 속에 적혀 있음으로 예로부터 옳다고보아 금석같이 믿습니다. 우리 성교의 전해옴도 경전을 통하여 된 것입니다.

 

천지창조부터 역사가 끊임없이 기록되어 구약과 신약에 뚜렷하게 증명되고 오늘에 이르러 집집마다 입으로 외오고 소리로 노래합니다. 소가 땀을 흘릴 만큼 실어다가 집에 채우더라도 해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글이 중국의 경서와 사기에 적지 않게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경서 가운데 이런 말들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역경에 "상제(上帝)께 바치나이다" 시경에 "상제께 아뢰나이다" 서경에 "상제께 제사하나이다" 하였고 공자는 "하늘에 죄를 얻으면 기도를 바칠 곳이 없나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늘을 공경하라 하늘을 두려워하라 하늘에 순종하라 하늘을 받들어라 하는 학설이 있어 여러 사람들의 여러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의 사기가 오지 않았더라도 별 관계가 없었고 비록 왔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해 요(堯) 시대의 홍수와 진시왕 때 분서(焚書)로 사라져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손오(孫吳) 때에 이르러 적조년간(赤鳥年間)에 쇠 십자가가 발견되었고 당나라 정관(貞觀) 9년에는 경교(景敎)가 크게 떨쳐 조정의 저명한 인사로부터 시굴의 서민에 이르러 일제히 숭상하고 제사를 크게 지내고 경교비를 세우고 위성(魏徵) 방현령(房玄齡) 같은 대가들도 독실히 믿어 의심치 않었나이다. 명나라 만력년간에 서양의 선비들이 들어와 저술한 서적들이 많이 있어 오늘에 이르러 중국에 전해 나려왔습니다.

천주께서 동방을 이렇게 잠잠이 도우심으로 동방에 행복이 오고 우리도 이 행복에 참여함이 신기하옵고 이미 50년이나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주재계심을 알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 증거를 들어 주재(천주) 계심을 이미 밝히 알았으니 천주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심은 우리에게 그 복을 보내주시고 그 나타내시려고 하심을 마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을 만드사 우리를 덮으시고 땅을 만드사 우리를 실으시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사 우리를 비추시고 초목과 금수와 금 은 동 철은 우리가 누리고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모태에서 나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가지가지 큰 은혜가 이와같이 한이 없은 즉 인간의 본분은 마땅히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입고 먹기만 하면 인류를 내신 큰 은혜를 저버림이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비유하여 아버지가 집을 짓고 살림을 마련하여 아들에게 주어 쓰게 하였는데 그 아들이 그 집에 살며 살림을 쓰면서 제가 잘난체하며 부모를 섬기는 도리와 근본을 갚는 뜻을 모르면 이것이 효도입니까. 아니면 불효입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 삶이 그 터럭끝만한 것이라도 모두 천주의 힘입니다. 내시고 기르시고 도으시고 돌아보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죽은 후 받은 상을 구태여 말할 것 없이 당장 받고 있는 은혜가 이미 극도에 이르러 비할데가 없으니 우리가 일신을 다하여 그를 받들어 섬긴들 그 만분의 일을 보답한다 하겠습니까. 받들어 섬기는 길은 고상하여 실행이 어려운 일도 아니요 은밀한 일을 들추며 기괴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져 천주의 계명을 지킬 따름입니다

계명이란 천주께서 계시로서 가르쳐 주신 열가지 계명입니다.

 

1은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위에 흠숭하고

2는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거짓 맹서를 하지 말고

3은 첨례날(주일)을 지키고

4는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고

5는 살인하지 말고

6은 사음을 행치 말고

7은 도둑질을 하지 말고

8은 망년된 증참을 말고

9는 남의 아내를 원치 말고

10은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 열가지 계명을 종합하면 두가지로 돌아가니 즉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하고

남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위 세가지 계명은 천주를 흠숭하여 섬기는 절차요

아래 일곱가지는 자기를 닦고 성찰하는 공부입니다. 안씨(顔氏)의 네가지 말라는 것이나

대기(戴記)의 아홉가지 생각이 이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충성과 관서와 효도와 우애와 인애와 의리와 예의와 지혜가 이 안에 들어 있어 터럭만치도 부족된데가 없습니다. 이 도를 한 집안에서 실행하면 집안이 정돈될 것이요 한나라에서 실천하면 나라가 다스려질 것이요 온 천하가 실행하면 온 천하가 태평할 것입니다.

 

열가지 계명 가운데 한 가지라도 범할 수 없으며 몸으로 범하기 뿐만 아니라 더욱 마음으로

범함을 급합니다. 무릇 사람의 잘못은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나서 그 행동을 그릇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법은 그 행동을 다스릴 수 있으나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천주의 계명은 행동만

다스릴 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스립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위태롭고 도를 구하느 마음이 미약하여 자칫하면 죄를 범합니다.

사욕과 편정이 백방으로 유인하여 교만으로 꾀이고 분노로 꾀이고 탐도로 꾀이고 사음으로

꾀이고 질투로 꾀이고 해태로 꾀여 사람을 사지에 몰아 넣습니다. 시시로 경계하여 물리치니

아니하고 또 그때 그때 공격하지 아니하면 함정에 빠짐을 면치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싸우고 싸움이 계속할 때 싸와 이기면 공이 되고 이기지 못하면 죄가 됩니다.

 

공과 죄의 판결은 육신이 죽는 날에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으사 선을 아니 갚으심이 없고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의로으사 악을 아니 벌하심이 없습니다. 만일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까지 없어진다면 상이나 죄를 어디다가 베푸시겠습니까. 그래서 영혼이 죽지 않음을 알어야 하겠습니다.

 

무릇 혼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혼이요 둘째는 각혼이요 셋째는 영혼입니다. 생혼은 초목의 혼으로 나서 자랄 수 있으나 앎과 깨다름이 없고 각혼은 금수의 혼으로서 앎과 깨다름이 있으되 뜻과 이치도 모르고 옳고 그른 것도 모릅니다. 영혼은 사람의 혼으로서 능이 나서 자라서 알고 깨다를 수 있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고 도리를 추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만물 중에 가장 높습니다. 사람이 높다고 하는 것은 그 혼이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모태에서부터 타고 난 것입니다. 어찌 초목이나 금수처럼 더부러 썩어 없어지겠습니까. 예전에 유학자들도 혼이 세가지가 있고 영혼이 없어지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3혼이 여러번 흩어진다 또는 혼이 올라가고 혼이 나려간다 하고 그 혼이 셋이 있고 영혼이 죽지 아니함이 분명합니다.

 

이미 죽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면 어디를 가야 하겠습니까. 선자의 영혼은 천당에 올라 상을 받고 악자의 영혼은 지옥에 나려 벌을 받습니다. 상은 천당의 영원한 복락이요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입니다. 만일 천당을 보지 않고 지옥을 보지 아니 하였다 해서 천당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면 이는 눈먼 사람이 하늘을 보지 아니하였다 해서 하늘에 해가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일이 이치에 합하면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고 이치에 합하지 아니하면 보일지라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믿을 수 있고 믿을 수 없음이 보고 못보는데 매이지 아니하고 다만 이치에 합함과 이치에 합하지 아니함에 있을 따름입니다. 이치에 합한다면 천년후에 올 일이라도 가만히 않아서 알아낼 수가 있으니 하필 내가 몸소 보아야 하겠습니까.

 

국가에도 상과 벌이 반드시 있습니다.

 공로가 있는 자는 조정에 불려 올려 벼슬과 녹을 받게 하고 황금과 비단을 주고 죄가 있는 자는 쫓아내어 옥에 가두고 사형에 처합니다 한 국가의 입금에게도 상벌의 권한이 있거늘 하물며 천지의 대군에게랴 그 상은 이 세상의 벼슬과 녹에 비할 바가 아니요 영원히 끝없는 고통입니다.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나리는 결정이 한번 이루어지면 다시는 변경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 세상 사람들이 영혼이 죽지 아니함을 밝히 알면서도 어디 있는 줄을 모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이미 영원한 상과 영원한 벌이 있은즉 세상 일이 헛된 환상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길어야 백년을 넘지 못하면서도 이로운 것만 탐하는 마당에서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이미 얻은 것은 잃을까봐 걱정하는새 어느듯 늙음이 닥아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몸이 한번 죽으면 부귀공명이 필경 허무로 돌아가고 맙니다

하물며 부귀공명은 한 평생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 티끌같은 꿈에서 깨나기가

어찌 그리 어렵습니까.

 

오 이 세상의 복은 어그러져 완전치 못하고 천상의 복은 완전하여 어그러짐이 없습니다. 이 세상 복은 잠시 뿐이요 천당의 복은 영원하여 잠시 뿐이 아닙니다. 어그러지고 잠시 뿐인 이 세상 복을 얻고저 함은 완전하고 영원한 천당의 복을 얻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비록 천당의 영복을 얻지 못할지라도 지옥의 후환만 없다면 세상의 잠시 영화를 도모하여도 좋겠지만 이 지옥의 영원한 벌을 어찌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을 때 정신을 차리지 못해 깨닫지 못하다가 육신이 죽은 뒤에야 뉘우친들 이미 늦었습니다. 이러므로 목을끊을 큰 도끼가 앞에 있고 몸을 삶을 큰 솥이 뒤에 있더라도 꿋꿋하게 굽히지 아니하는 자가 대대로 적지 않습니다. 이것도 진정한 교의 한 증거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해 말하면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공번되고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참되고 지극히 뛰어나고 오직 하나요 둘이 없는 교입니다.

 

어찌하야 지극히 거룩한 교라 하는고 하면 천주께서 친히 세우셨고 예로부터 성인들이 대대로 뒤를 이어 그 옳음을 탄명하였고 그 규칙을 정하여 생명을 바쳐서 증명하기까지 이르렀으니 지극히 거룩하다 이를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공번되다 이르는고 하니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늙고 젊음을 막논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다같이 봉행하여야 할 도이오니 지극히 공번되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바르다 이르는고 하니 광대명백하고 크고 평평하여 터럭만치도 치우친 행위나 바른 것을 도루시키는 일이 없으니 지극히 바르다고 이를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참되다 하는고 하니 천하에 교가 없는 나라가 있는 적이 없으되 그 교가 참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노자나 장자는 허무사상에서 참됨을 잃었고 선도와 불교는 환상과 망상에서 참됨을 잃었고 이밖에 군소 사상과 미신과 방술은 입으로 논할 가치도 없으나 성교의 도리는 진실하여 거짓이 없어 영원히 그르치지 아니하니 지극히 참되다 이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지극히 완전하다 하는고 하니 초목으로 비유하면 이단교들은 어떤 것은 줄기가

있어도가지가 없고 어떤 것은 잎이 있어도 꽃이 없고 어떤 것은 꽃은 있어도 열매가 없어 지작과

결말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접속될 수도 없으되 성교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이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어 천지와 천신과 마귀와 인류의 내력과 과거 현재 미래의 질서가 가지가지로

다 갖추어 있으니 지극히 완전하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슬프다 금과 옥을 가르켜 억지로 기와라 자갈이라 하고 먹어서 이로운 것을 가지고 억지로 못먹는 것이라 하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할고 또 말하기를 부모를 멸시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 하니 이는 성교의 주요한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계의 제4계명이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라 하였습니다. 충과 효의 두 글자는 만대에 변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육신을 봉양함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로되 성교를 봉행하는 사람은 더욱 절실히 삼가고 조심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김에 그 예를 다하고 봉양함에 그 힘을 다합니다. 충성을 임금님께 옮겨 자기 몸으로 하여금 생명을 없애 끊는 물 속에 드러가고 타는 불을 밟기도 하여 감히 회피하지 아니 하나이다.

 

이대로 아니하면 계명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 되오니 이래도 과연 부모를 멸시하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학설입니까.

 

다만 나라의 임금이 금하는 데도 백성이 실행하는 자 있고 집안 아비가 금하는 데도 자식이 실행하는 자가 있어 이것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까. 이것도 역시 말은 되오나 지위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일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으니 집안의 아비가 가장 중하나 한 집안의 아비보다 높은 이는 나라의 임금이요 한 나라 안에서 임금이 가장 중하나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이는 천지의 큰 임금이십니다.

 

집안의 아비의 명을 듣고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지 나니 하면 그 죄가 무겁습니다.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 대군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는 더욱 커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김이 임금의 명령을 일부러 어기려는 것이 아니오 부득이 한데서 오는 것인데 이것을 들어 부모와 임금을 업신여긴다 함이 옳은 말이 오니까.

 

또 말하기를 재물과 여자를 서로 융통한다 합니다. 재물의 융통은 예로부터 국가를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해야만 백성을 서로 의지하고 살아 갑니다. 만일 재물을 융통하고 법이 없으면 온 나라 안에서 살아나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바로 이것을 좋지 못한 법이라 하여 도로혀 금해야 될 일입니까.

 

여자를 서로 융통한다고 하는 것으로 말하면 금수도 그렇지 아니한 것이 있거늘 하물며 그것을 성교에 돌리려 합니까. 십계의 여섯째에 간음을 행하지 말라 하였고 아홉째에 남의 아내를 원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섯째 계명은 몸으로 범함이요 아홉째 계명은 마음으로 범함입니다 성교에서 간음을 엄격하게 금함이 이와 같이 거듭 겹쳐 있는데도 여자를 융통한다는 말을 퍼뜨리니 어찌 이와 같이 윤리를 거스리고 떳떳한 질서를 어지러이 하는 교가 있겠습니까.

교리의 참되고 거짓됨과 사리의 바르고 그름은 한쪽으로 밀어 놓고 얼토당토 아니한 말을 가지고 공격하고 배척하니 외국의 교라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금은 산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순금이면 보배가 되듯이 교가 어디서 왔건 그 거룩함이 참되면 그 교의 전래함에 어찌 이 나라 저 나라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중국으로 말하면 각국 사람들이 왕래하며 서로 교제합니다. 불교의 스라마나의 숭상도 버려둡니다 .

외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나 일찍이 금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불교의 해 끼침이 오래 되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사찰의 건축은 가장 사치를 다한 것이요 금부처와 동불상들은 재산을 낭비한 것입니다. 저 불교는 인도의 이단입니다 성교의 글을 훔쳤고 성교의 규칙을 본떴으나 옳은 도리를 그르쳤고 윤리가 끊어졌고 기강이 뒤집혔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붉은 빛깔을 망치는 자줏물이요 못자리를 망치는 가라지입니다. 길흉화복의 설을 퍼뜨려 무식한 사람들을 공갈함이 이제 이르러 괴상한 폐풍이 되었습니다.

 

무당 풍수 점장이 상장이와 같은 사람들 까지도 부녀와 아이들을 홀리고 혹하게 하여 돈과 재물을 살살 낚아감을 예사로 보아 넘기면서 홀로 성교만이 포섭의 은전을 받지 못함은 어찌된 일입니까.

가정에 해를 끼쳤습니까 나라에 해를 끼쳤습니까 그 하는 일을 보고 그 행실을 살피면 그 인간이 어떠함을 알수 있고 그 가르침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역적질을 하였습니까.

 

도둑질을 하였습니까

일직이 간음을 하였습니까

살인을 하였습니까.

 

또 법에도 없는 형벌을 해서 천주를 배반케 하고 더러운 폭설로 모독하는 사실이 허다합니다. 대저

천주는 만물을 만드신 큰 부모시오 만물을 다스리시는 큰 주재십니다 옛 성현들은 일이 생겼을 때 우러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해마다 계속 흉년을 당하고 있습니까.

 

백성과 나라가 곤궁에 빠진 이때 바라건대 우리의 어지신 임금께서는 밤에도 옷을 벗지 마시고 해뜰 무릅 진지를 잡수실 만큼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시사 어지심을 베푸시고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흡족케 하시옵소서 아 저 성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홀로 우리 임금님의 백성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이 인간들이 어찌하여 극도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아낌이 없는고 옥안에서는 지쳐서 죽고 문밖에서는 목이 잘려 죽음이 연달아 끊이지 아니하여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 하늘을 찌르고 아비는 자식을 부르고 형이 아우를 부르고 궁지에 몰려 몸을 돌이킬데가 없는 것 같이 되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대저 목숨을 덜고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참된 교의 증거가 되고 천주의 영광을 들어냄은 우리들의 분수에 잇는 일입니다 이 몸도 장차 죽을 목숨입니다. 이렇게 감히 말할 때를 만나 한번 머리를 들고 길게 외치지 못하고 슬프게 입을 다물고 죽는다면 산처럼 쌓인 이 하회를 장차 백대의 후세에 폭로할 수 없겠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바로 이때에 밝이 비추어 굽어 보시와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그릇된지 올바른지 자세히 판단한 다음 위로는 나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변하여 도의로 돌아와 금령을 늦추어 체포하는 법을 거두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내놓고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가 제 업을 즐기면 한가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를 천만번 바라옵니다.

 

또 한 말씀드립니다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바입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도 영혼은 술과 밥을 받아 먹을 수 없거늘 하물며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 하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에 공급하는 것이요 영혼의 양식은 진리와 덕행입니다 아무리 지극한 효자라 해도 맛좋은 것이라 해서 잠들어 있는 부모앞에 차려드릴 수 없는 것은 잠들었을 동안은 먹고 마시는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들었을 때도 그렇거든 하물며 영원히 잠들어 버렸을 때는 어떻하겠습니까.

쌀과 수수와 기장과 피와 향기로운 과일로 된 젯상을 차려 놓음이 헛된 일이 아니면 거짓된 일입니다.

사람의 자식이 되어 헛되고 거짓된 예로 어찌 이미 죽은 어버이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양반 집의 신주라고 하는 것도 천주교에서는 금하는 것입니다. 이미 정신의 기백과 육체의 골격이 서로 연결된 것이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노고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비라 어미라 함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데 목수가 만든 것이요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것을 가지고 참 아비와 참 어미라 부릅니까.

 

바른 이치에 근거가 없고 양심이 허락지 아니합니다.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천주교에 죄를 얻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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