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와음악

땐사의순정

이모르 2021. 1. 6. 20:27

 

 

 

 

그녀가 교육자 집안으로 시집을 올 때는 대학가의

젊은 사람들은 리메이크된 댄사의 순정이 애창되고 있었다

명절 때 부모님이 계시는 시댁에 형제들이 다모였다

새색시는 한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첫 번째 맞는

명절에 모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오후가 되어 한숨돌리게 되어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응접실로 집합하라고 시동생 막내가 성화를 대었다

큰사위는 교감 선생님이고. 3째사위인 목사님을 비롯하여 조카들 까지

선생이 었으니 샘님들의 잔치었다

 

 

새색씨를 골려 먹기위해서 노래를 시켰다

노래는 정말 싫었으나 그녀는 불참 할수도 없어

쭈그리고 있다가 연이은 노래 재촉에

 

가엽은 그녀는 손을 앞으로 잡은 얌전한 포즈를 잡은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

땐사의 순정

좌중이 미소를 먹음과 동시에 노래 청취하는데

첨본 남자품에 얼싸안고”그 대목에서 .....

 

그때 목사 사위는 으흥 하며 콧소리 박자를 넣었다

 

좌중은 웃음 바다가 되고 혼비백산한 새색시는 도망하여

숨어버렸다 그후 그녀는 땐서의순정노래가 들려오면

과민반응으로 얼굴이 달아올라서 그녀앞에서는 댄서의순정

이야기는 할수 없게 되었다

 

 

 

 

 

 

영화 자유부인의 장면

 

 

1950년대 후반기엔 미군들의 자유 분망한 사교춤이 번져

사회 도덕적 가치가 땅에 떨어져 누구나 춤을 배우고 있었다

 

1954 4월부터 1955 6월까지 해군 헌병대위를 사칭한 박인수가

여대생을 비롯해 70여명의 여인을 간음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박인수는 중학을 중퇴하고 해군에서 헌병으로 복무하던중 애인에게 배반을

당하자 타락하기 시작했다 박인수는 군에서 전역한 1954 4월부터

주로 해군장교 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을 무대로 해군 헌병대위를

사칭하며 소위 처녀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불과 일년 남짓한 사이에 70여명의 여성과 관계하였다 훤칠한 키의

미남이었던 박인수는 헌병으로 복무시절 익힌 사교춤 실력으로 여성들을

유혹했는데 피해여성들의 상당수가 여대생들이었으며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다 

 

 

법정에서 검사가 '혼인을 빙자한 간음'이라고 주장했으나, 박인수는 이를 부인하였다.

 박인수는 '자신은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고, 여성들이 스스로 몸을 제공했다.'하면서

그 많은 여대생은 대부분 처녀가 아니었으며 단지 미용사였던 한여성만이 처녀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런 박인수의 주장은 '순결의 확률이 70분의 1이다'

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세상의 큰 관심을 모았었다.

 

이에 1심 법정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

고 하면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단지 공무원 사칭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하여 2만원의 벌금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2, 3심에서는 유죄가 선고, 1년의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1596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신문에 연재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이 영화의 원작은 작가 정비석(鄭飛石: 1911-1991) 1954년 가을부터 8개월간

서울신문에 연재하여 독자의 큰 인기를 얻었다. 원작은 당시 중년 부인들의

부허한 생활 태도와 윤리관을 다루어 당시 사회의 큰 논란과 물의를 일으켰으며,

판매 부수도 최고를 차지하였다.

 

당시, 이 문제를 제일 먼저 제기한 사람이 법과 대학의

황산덕(黃山德) 교수였는데, 그는 어째서 대학 교수의 부인을 그토록 나쁘게

표현했는가를 따졌다. 단순히 대학 교수를 소재로 해서 문제가 된다면 그럼

어떤 직업을 소재로 하느냐는 공방전으로 꽤나 시끄러웠으나,

황산덕의 판정패로 끝났다.

 

영화를 지금시대상에  보면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이 춤을 추는 무도장의 모습이나 말씨,

50년대 서울 거리의 모습 등 오히려 낯선, 어쩌면 이국적이기까지 한 장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또한 당시의 계급차이나 빈부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일단을 춤바람이란 모티브를 통해 풍자하고 있기도 한다.

 

대학교수의 부인과 춤꾼과의 바람이란 설정은 현재까지도 한국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모순의 단초가 어디에서부터 있었던가를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주인공 김정림의 데뷔작이기도 한 자유부인은 아마도 60대 이상의 이른바

왕년의 한국영화 관객들에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내 인생의 영화일 것이다.

 

작사:김영일

작곡:김부해

노래:박신자

1959

 

이름도 몰라요 성도몰라

처음본 남자품에 얼싸안겨

푸른 등불 아래 붉은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섹스폰아

 

쌔빨간 드레스를 걸처 입고

넘치는 그라스에 눈물지며

비내리는 밤도 눈내리는 밤도

춤추는 댄사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섹스폰아

 

별빛도 달빛도 잠든밤에

외로히 들창가에 기대서서

슬픈 추억속에 남모르게 우는

애달픈 댄사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섹스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