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기

쾨셈이야기 (터키여행15부)

이모르 2021. 3. 20. 21:33

 

 

 

 

Kösem Mahpeyker Sultan

 

1590?~1651.9.3.

 

 

 

 

오스만 투르크가 얼마나 무서웠나하는 것은

드라큐라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의 수도로 브람 스토커가

지은 <드라큐라>의 원조로

알려진 블라드 테페스의 고향이다.

 

블라드 테페스는 루마니아의 군주로

오스만 투르크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는데

이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로잡은 포로를 산 채로

쇠꼬챙이에 끼워 죽이는 것으로

거기에 나오는 피를 마셨다는 이야기이다.

브람 스토커가 블라드 테페스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늘날에 알려진

드라큐라 백작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뱀파이어의 조상으로 알려진

귀신이나 악마가 속속 전세계에서 등장했다.

 

00 투어의 터키주재 한국 미녀 가이드 조나나 씨

 

 

00 투어의 터키주재 한국 미녀 가이드 조나나 씨

버스에서 여성가이드 조나나씨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장희빈 같은 여인이 오스만 쿠르트에도

있었나 봅니다

우리의 사극에 장희빈이 단골 메뉴지만

터키의 연속극 제일 주인공이

쾨셈이라 하는군요 !!!

 

 

 

쾨셈 술탄은 오늘날 그리스의 티노스(Tinos)

섬 출신으로, 태어났을 당시의

이름은 아나스타샤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하렘으로 끌려오기 전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보스니아 대총독이

황궁에 진상하여 황제 아흐메트 1세의

후궁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합니다

이후 개종하며 마흐페이케르(Mahpeyker)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훗날 황제가 되는

무라트 4세와 이브라힘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1617년에 아흐메트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동생인 무스타파 1세가

뒤를 이었고, 선제의 후궁들은 모두

별궁에서 생을 마치도록 하는 관습에 따라

황궁에서 쫓겨났습니다

 

 

 

쾨셈이 죽거든 내 곁에 오스만제국의

역대 왕 중에

사랑하는 여인을

자기 무덤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한

왕은 14대 술탄 아흐멧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스탄불에 오시면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불루 모스크일 것입니다.

 

블루 모스크 외형

 

블르 모스크 내부

 

 

블르 모스크 내부

바로 이 사원을 지은 왕이지요. 이 불루 모스크 옆에 술탄 아흐멧 가족의

무덤이 있는데 왕비들은 왕의 가족묘지에 들어 올 수 없는 계율을 어기고

오직 그녀만이 당당하게 왕의 옆에 묻혀 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날 톱카프 궁전에서 외국 사신들을

위한 연회가 베풀어졌는데 쿄셈이라 불리는 한 집시여인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이 날 술탄 아흐멧은 그만 이 여인의 세련미와 미모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곧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게 되었고 국적,

연령, 본명이 불 분명한

집시를 왕비로 삼는다는 것은 오스만 제국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드디어 집시인 이 쿄셈은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고

왕은 첫번째 왕비를 멀리하고 오직 쿄셈만을 옆에 두었습니다.

첫번째 왕비는 너무나 마음이 상하여 그만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항상 그렇듯 이래서 비극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장자 계승법에 의해 첫번째 왕비의

아들인 오스만이 1618년 13세의 나이로 왕위를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위기를 느낀 쿄셈은 남몰래 어린 왕에게

마약을 술에 타서 여자와 함께 계속

넣어 주어 어린 왕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였습니다.

 

어느날 중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쿄셈은

“대 제국의 황제인 오스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여러분들은 알고 나 계십니까?”

하고 모함하였습니다. 중신들이 왕에게 가보니 마약과 술에 취해

왕은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어있었습니다. 이 때 쿄셈은

그를 정신병자로 몰아세웠습니다.

 

술탄들의 토카프 궁전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전시된 술탄들의 보물

 

 

쿄셈의 측근은 정신병자가 어찌 대 제국의

왕이 될 수 있겠는가

하여 강제로 퇴위 시키고 (이 때 나이 17세)

예디쿨레로 보내어 사지가

묶인 채 처참히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도 로마의 성벽이 시작되는 곳에

예디쿨레(일곱 개의 성)가 그대로 있고

젊은 오스만왕이 죽었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결국 쿄셈의 아들 무랏드 4세가 1623년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고,

어리다는 이유로 쿄셈이 뒤에서

조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었습니다.

 

철이 든 후 무랏트 4세는(시중에서

커피집에 모여 궁중의 불평을 늘어

놓는다하여 커피집을 폐쇄했던 왕)

자기 누나와 동생을 살해하게 됩니다.

 

 

쿄셈은 분노하여

“네가 오늘에 있기까지 누구의 덕인데

네 형제를 마음대로 죽이는가?”

 

그러자 무랏드 4세가 말하기를

“나는 어머니가 오스만 형에게 한

그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왕권에 도전할 자는 누구든지 죽일 것입니다.

 

“ 아무도 모르고 있으리라 했던 오스만에게 행한 행위가 벌써

아들의 귀에 까지 들어갔음을 알고 다른 아들 이브라힘이라도 살리고자

그를 불구로 만들어 왕권에 도전할 의사가 없음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무랏트 4세가 재위 17년만에 죽자 쿄셈은 이브라힘에게

왕위를 물려받게 했습니다. 불구가 된 이브라힘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성격이 비뚤어져 쿄셈에게 대항했습니다.

 

결국은 반대 세력들에 의해 몰리게 되자 쿄셈은 장롱 속에 숨어있었으나

들켜 커튼 줄에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하고 65세로서 한 세대를 풍미했던 그

의 영화는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시 출신인 그녀가 술탄 아흐멧의 가족묘지에 묻힐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된 것은 오직 순정 파 황제 아흐멧의 유언 덕입니다.

 

 

 

 

14대 술탄 아흐멧 이 건축한 블루모스크는 현재도 사용중인

사원이다여러개의 문중 하나로 입장하려고 기다리는 평보일행

 

 

 

 

 

 

터키 집시음악 Nicos - Kalinifta

 

음악 출처:터키 집시음악 Nicos / Kalinifta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

(현 이스탄불)에 진격하기 전
이미 거주하고 있었던 집시 음악인들은
투르크 치하에서도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투르크 황제와 귀족들을

위한 궁정 음악가로서,
또 한 부류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거리의 음악가로서
그들은 음악과 함께 살아왔다.
현재도 터키의 레스토랑이나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하는
거의 대부분의 뮤지션은 집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과 서양이 마주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지역적 특징은
음악적인 영향으로도 나타났다.

가장 주요한 특징은
18세기 서양의 악기인 클라리넷이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클라리넷의 도입은 집시 뮤지션들의 연주와

음악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터키에서 집시의 음악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파실(Fasil)이라고 지칭되는

가벼운 클래식의 형태이며,
또 다른 형태는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벨리 댄스(Belly Dance)를 위한 음악이다.

 

 

Nicos - Kalinifta

NICOS -Muwashah-.

. موسيقى يونانية عربية ..الفن الراقي

 

 

Nicos- Kalinifta
Nihavent Oriental(Mediterraneo) - Nicos
Nicos란 악기는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 교도들이
즐겨 연주하는 악기 [Kalinifta-가슴이 뜨거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