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가 국문 당 할 때 공술하기를 “신의 나이가 38세입니다 선비가 세상에 나서 믿는 것은 임금의 마음뿐입니다. 망녕되게 국가의 병통이 이(利)의 근원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라의 명맥을 무궁한 후세까지 세롭게 하고자 하였을 뿐이고 조금도 다른 뜻은 없습니다.“ 하였다 이긍익(영조때 사람)의 연려신기술 인용 조광조는 연산을 폐위 뒤를 이은 중종때 알성급제한 사람이다 그를 기리는 도봉서원을 지나며 선두에 있던 관촌 석금 춘곡 평보는 조광조의 이상 정치에 대한 것과 수구세력의 모함으로 좌절하고 마는 과정을 논하며 춘곡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짜피 정치란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할 수 박엔 없다 이상(理想)적인 사상에 반한 다른 부류를 함께 한다면 바르게 나아 갈수 있겠는가??“ 평보가 말했다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