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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미녀(마리 앙뚜아네트 )

장 마르크 나티에 (1685~1766)의 39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모습으로 표현된 퐁파두르 부인391746), 캔버스에 유채, 101*82㎝ ⓒ Photo RMN-GNC media, Seoul, 2010 프랑스 베르사유 궁은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 세계 최대의 명소 중 하나다. 이곳에 걸려 있던 국보급 회화 작품 및 유물 84점이 바다를 건너 한국을 찾아왔다. 프랑스 절대 왕정의 전성기인 루이 14세부터 루이 16세에 이르는 200여 년간의 프랑스 왕실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특히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다양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14세의 어린 나이로 루이 16세와의 결혼을 위해 오스트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온 이 꿈 많은 소..

인문 2020.12.13

터키의미녀들(쿄셈과록셀리나)

터키여배우 사진을 여러곳을 찾아 다녔지만 구할수 없었는데 딱 한군데 에페소에서 촬영대기 하는 여배우를 찾아내서 빌려왔습니다 꾀 유명한 배우라던데 이름은 모릅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 가 그린 노예매매 와 오달리스크 오스만 터키의 술탄들은 궁궐에다 하렘을 차려놓고 사들인 노예 나 전쟁포로 등 천민들을 들여와 황태자를 낳게 했는데 오스만제국에서 짚시였던 쿄셈과 우크라이나 노예 였던 록살라나 는 신분을 뛰어넘어 황후에 오른 사람들입니다 술탄 아흐멧1세 초상화 쿄셈이 죽거든 내 곁에 !!!!!! 오스만제국의 역대 왕 중에 사랑하는 여인을 자기 무덤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한 왕은 14대 술탄 아흐멧 뿐입니다. 쿄셈의 초상그림을 구할 수가 없어서 삽화로 그려보았습니다 쿄셈은 짚시 발리댄서..

인문 2020.12.13

영국의미녀들(헨리8세의여인들)

마이어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로 1996년 영화 로 데뷔했다. 이후 미국 드라마 를 비롯해 영화 등에 출연했다.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에 있던 프라센티아 궁전에서,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남매로는 형인 아서(웨일스 공), 누나 마거렛(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의 왕비), 여동생 메리(프랑스의 루이 12세의 왕비)가 있다. 1493년에 아직 젖도 못 뗀 헨리는 드바 성의 성주로 임명되었다. 다음 해 1494년에는 요크 공작이라는 작위를 수여받았고, 그와 더불어 잉글랜드 문장원총재 및 아일랜드 총독으로 지명받았다. 1501년에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막내딸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하였던 아서가 급사하자, 헨리가 죽은 형의 뒤를 이어 웨일스 공이 되었다. ..

인문 2020.12.13

이집트미녀 크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Cleopatra) 기원 전 50 년경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그 어떤 여인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녀의 흥미진진한 생애와 러브스토리는 지금껏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Cleopatra Testing Poisons on Condemned Prisoners 파라오 율법에 따라 남동생들과 두 번씩이나 결혼해 왕좌에 올랐고 왕권을 쟁취하기 위해 남편이며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리했다.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여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생애는 소설보다 더 흥미롭다. Gerome, Jean-Leon cleopatra before caesar 클레오파트라의 생애 중에서 일반인들이 가장 관심..

인문 2020.12.13

중국미녀양귀비

양귀비역 중국배우 판핑핑 당현종의 사랑인 양귀비는 실은 그의 18번째 아들인 수왕(壽王)의 세자비로 궁에 들어왔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세력가인 숙부 양현교의 양녀로 자랐습니다. 재기넘치고 풍만한 미녀로 세자비로 들어온 그녀는 마침 아내 '무혜비'를 잃고 외로워 하던 현종의 마음을 흔든 것이지요. 740년 양귀비가 21세때, 54세이던 현종은 그녀를 수왕의 품에서 떼어냈고, 6년 후 그녀에게 '귀비'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정식 황후는 아니었지만 그와 맞먹는 것이었죠.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沈魚落雁,閉月羞花. 물고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기러기는 땅밑으로 떨어지며, 달은 구름뒤로 얼굴을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노라. 위 시는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다. 양귀..

인문 2020.12.13

한국의미인(미실)

필사본 《화랑세기》는 미실의 아버지가 제2대 풍월주 미진부(未珍夫)이며, 미진부의 아버지는 아시공이며, 아시공의 아버지는 선모이다라고 부계를 밝히고 있다. 미진부는 아시공과 삼엽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삼엽공주는 법흥왕과 그의 후궁 벽화부인(碧花夫人)의 딸이다. 벽화는 파로(波路)와 벽아부인(碧我)의 딸이며, 벽아가 섬신공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바로 위화랑(魏花郞)이다. 위화랑은 초대 풍월주이자 소지마립간의 마복자로, 4대 풍월주 이화랑의 아버지이며, 오도(吾道)와의 사이에서는 옥진(玉珍)과 금진(金珍) 등의 딸을 낳았다. 미실의 어머니 묘도부인(妙道夫人)은 법흥왕의 후궁이며, 묘도부인의 어머니는 같은 법흥왕의 후궁인 옥진궁주(玉珍宮主)로서 위화랑과 오도부인의 장녀이다. 옥진이 7색조가 가슴으로 들..

인문 2020.12.13

정하상의상제상서

상제상서는 지금도 마카오등 에서 신부수업에 교본으로 쓰인다 합니다 103위 순교 성인 정하상 상제상서(上宰相書) 엎드려 아뢰옵건대 맹자가 양자와 묵자를 사설이라 하여 배척한 것은 그 사상이 유교학계를 해칠까 두려워 하였기 때문이요, 한유가 석가와 노자를 쳐서 물리친 것은 그 사상이 일반을 미혹하여 혼란케 할까 했어였읍니다. 옛 군자가 법을 세워 금령을 펼 때 반드시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하고 해됨이 있는가를 알아 보았습니다. 무릇 의리에 맞는 것이라면 비록 나무꾼의 말이라도 성인이 반드시 받아드려 내 버리면 안되는 말로 되어 있거늘 우리 나라의 천주성교를 금하시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습니까? 우선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몹시 원통스러운 말로 사교로 몰아 큰 법을 세워놓고 신유년(1801..

인문 2020.12.13

이괄의난

연려실기술 제24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이괄(李适)의 변(變) 이괄은 참판 이육(李陸)의 후손으로 무과에 합격하였으며, 글을 잘하고 글씨를 잘 써서 명성이 있었다. 계해년(1623)에 북병사(北兵使)로 임명되어 부임하기 전에 김류(金X29804;)ㆍ이귀(李貴) 등이 이괄이 재주와 지혜가 많다 하여 그에게 반정의 비밀 계획을 말하였더니, 이괄이 강개하여 따랐다. 반정하던 날 부서를 나누는 등 모든 계획을 이괄이 하였으나, 공훈의 등급을 논할 때에 반정에 늦게 참여하였다 하여 2등으로 낮추었으므로 이괄이 매우 불평하였고, 공론 역시, “박원종(朴元宗) 등이 반정(중종반정)을 할 때에 유자광(柳子光)은 처음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자였으나, 반정하던 날에 그의 계책을 썼으므로 일등 공신이 되었다. ..

인문 2020.12.13

공녀

나라가 힘이 없어 중국에 바쳐진 인간 진상품… 貢女(공녀) 잔혹사 전병근 기자 고려 이어 조선시대까지 '치욕' 계속돼… 元·明 등 새 국가 들어설 때마다 기승 딸이 후보 뽑히면 얼굴에 약 발라 훼손… 비구니로 만들고 아기 때 시집 보내기도 "딸을 낳으면 비밀에 부치고 남이 알세라 걱정하는 형편이라 이웃도 그 딸을 볼 수가 없다. 딸을 숨긴 사실이 발각되면 온 마을이 피해를 입게 되며 친족을 묶어두고 취조하여 모멸감을 준다. 처녀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는데, 돈 있는 자는 빠지고 돈 없는 자는 끌려간다." 고려 시대 이곡(李穀·1298~1351)이 먼 원나라 황제에게 올린 상소는 절절했다. 그가 애통해 한 것은 때마다 중국에 바쳐야 했던 '인간 진상품', 공녀(貢女). 치욕의 역사는 5세기 초까지..

인문 2020.12.13

북한지(北漢誌)

〔북한지의 槪觀〕 ■ 의미 북한산성 축성에 관한 기록이 오늘날까지 상세하게 전해지는 이유는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서의 기록뿐만 아니라 「북한지」(北漢誌)라는 사료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지는 한마디로 북한산성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담고 있는 역사지리서로써 북한산성 축성을 담당한 승려 성능(聖 能)이 산성기사(山城記事)를 편집하여 영조21년(1745년) 간행한 책이다. 북한산성의 축성은 팔도도총섭(전국의 승병을 총괄하는 직책)이라는 직책을 맡은 「성능」의 지휘 아래 축성되었다. 성능이 산성 완공 후 산성축성의 총본부인 중흥사에 기거하면서 틈틈이 집필하여 34년 후 영조21년(1745년)에 탈고 한 것이 이 「북한지」이다. 담당자의 기록인 만큼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저자 북한지의 저자는 숙..

인문 2020.12.13